丹野의 깃털펜333 맨드라미 / 김경성 https://m.blog.naver.com/kfbmoon/223027092112 맨드라미 / 김경성 시인 맨드라미 그의 근원을 찾아가면 주름진 길의 가계가 있다 길 바깥에 촘촘히 앉아있는 수천 개의 검은 눈이 ... m.blog.naver.com 2023. 2. 27. 맨드라미 / 김경성 맨드라미 김경성 그의 근원을 찾아가면 주름 진 길의 가계가 있다 길 바깥에 촘촘히 앉아있는 수천 개의 검은 눈이 있어 꿈속에서라도 어긋날 수 없다 단단하게 세운 성벽은 안과 밖이 없다 이쪽에서 보면 저쪽이 바깥이고 저쪽에서 보면 이쪽이 바깥이다 어디든 틈만 있어도 잘 보이는 눈이어서 지나치지 않는다 자리를 틀면서부터 새로운 가계가 시작된다 뜨거운 불의 심장을 꺼내 기둥을 세운 후 세상과 맞선다 처음부터 초단을 쌓는 것은 아니다 제 심지를 올곧게 땅속 깊이 내리꽂은 후 뱃심이 생기고 꼿꼿해질 때 온 숨으로 쏘아 올리는 붉음 높이 오를수록 몇 겹으로 겹쳐가며 치를 만들고 면을 서서히 넓혀가며 하나의 성이 세워진다 상강 지나 된서리 때리는 새벽 수탁이 볏을 세우고 퍼드득 날갯짓을 하며 날 듯 나는 듯 소란스럽.. 2023. 2. 19. 물고기의 눈 / 김경성 물고기의 눈 김경성 속눈썹이 사라진 후 풍경을 잘라서 망막 안에 가두었다 파문이 일 때마다 와닿는 전율에 앞으로 나아가거나 나무 사이로 스며들었다 저릿하게 구멍 난 몬스테라 잎 사이 쏟아지는 빛으로 살아가는 그보다 작은 것들의 숨, 나보다 더 많이 볼 수 있는 물고기 눈 뒤쪽에 내 눈을 맞추어서 그 숨을 들였다 물고기의 눈이 물속 풍경만 보이는 것이 아니듯 내 가슴 안쪽에도 숨어있는 길이 있었다 물고기가 위로 솟구쳤다가 물속으로 사라졌다 날지 못하는 나는 이 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날갯짓을 했던 것일까 견갑골의 통증이 잦아들 줄을 모른다 밀림으로 들어갔다가 나를 두고 왔다 끝내, 잃어버린 어안렌즈 뚜껑을 찾지 못했다 계간 다시올문학 2022년 겨울호 2023. 2. 19. 바다가 넘어갔다 / 김경성 바다가 넘어갔다 김경성 달이 기울어지기 전 부풀어진 가슴으로 바다를 다 품은 밤 맨살이 드러나도록 쓸려가는 바닷물, 끝내 한마디 말도 못 하고 목 언저리 쇄골을 지나 배꼽까지 드러냈다 갯고랑을 따라 조금 늦게 가는 바닷물 속으로 투망을 든 사람들이 첨벙첨벙 걸어 들어갔다 낙지를 움켜쥐고 달빛에 비춰보는 사람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생명들의 무너짐을 해루질이라고 했다 바다가 넘어갔다 백사장을 넘고 뻘밭을 넘고 수평선을 넘어 멀리멀리 갔다 바닷속으로 나를 끌어당기며 가던 바다와 어느 순간 하나가 되었다 함께라는 그 말은 그때 필요했던 것 보름사리 바다가 열리는 크레바스 같은 시간 뒤엉켜서 내는 소리가 출렁거렸다 달빛이 오래 비춰 주었다 - 계간 문파 2022년 겨울호 2023. 2. 19. 돌 속에서 잠든 새 / 김경성 돌 속에서 잠든 새 김경성 오래 생각하는 것들은 새가 되었다 어떤 새는 돌 속에서 잠이 들었다가 솟대가 되었다 하늘과 지상을 잇는 빛의 길을 내어주는 것이 그의 몫, 깃털이 빛을 받아 사람들의 머리 위에 무지갯빛을 내려주어도 염원처럼 생각은 쉬이 접어지지 않고 무엇이 되고 싶다고 한마디 말을 해보지만 간절한 말은 너무 깊이 있어서 가장 늦게 터져 나왔다 그 말은 끝내 번져가지 못하고 그저 맴돌기만 할 뿐 너무 오래 생각을 하거나 생각 속으로 너무 깊이 빠져드는 일은 돌 속에서 잠든 새를 꺼내는 일처럼 어렵다 정으로 수없이 내리쳐서 오래 잠겨있던 생각을 걷어내면 새는 그때 잠에서 깨어난다 돌 속에서 가장 먼저 나온 부리가 어떤 울음으로 말을 한다 그 말을 잘 접어서 하늘과 잇닿는 빗금 위에 .. 2022. 12. 24. 무자치 / 김경성 무자치 김경성 꺾이지 않는 몸이어서 구부리거나 똬리를 틀어서 몸으로 말한다 모서리가 없는 것들이 부드럽고 온화하다고 하지만 꼿꼿이 서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나뭇가지를 타고 바라보아도 언제나 어느 한 곳은 휘어져 있고 몸속에 독이 없어도 세상은 나를 똑바로 보지 않는다 빗방울도 화살이 되어 꽃잎을 떨어트리는데 내 몸도 길게 펴서 화살이 되어보자고 단 한 번에 쭈욱 앞으로 나아가 보려 하지만 저절로 휘어지는 몸 어찌할 수 없는 너는 너 나는 나 네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 그 무엇으로도 닿을 수 없는 너와 나라는 본질 자꾸만 구부러지는 몸 지나가는 자리마다 긴 파문이 인다 물옷을 벗고 저수지 둑을 넘어갈 때에도 휘어져야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나는 한 마리 무자치다 - 《경희문학》 .. 2022. 11. 1. 물고기 옆에 금잔화 꽃다발이 있다 / 김경성 물고기 옆에 금잔화 꽃다발이 있다 / 김경성 꽃이 먼저였는지 물고기가 먼저였는지 입술을 오므렸다가 펴는 바다만이 알고 있을 뿐 멀리 떠난 사람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말라가는 물고기 비늘만이 시간을 말해준다 손을 놓쳐버린 꽃들은 서서히 꽃 즙을 말리고 몸을 뒤척이며 제 비늘을 세우는 물고기의 검은 눈 속으로 파고든 햇빛마저 길을 잃었다 꽃을 놓은 손은 어디쯤 멈춰 서서 제 살 속의 아픈 말들을 삼키고 있을까 이미 숨을 놓아버린 것들이 내는 빛은 차마 말할 수 없는 어떤 슬픔을 머금고 있다 태엽을 많이 감아도 시곗바늘을 되돌려 놓아도 그만큼의 속도로 가는 회중시계를 꺼내놓는다 마른 꽃은 더 이상 마르지 않고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다 물고기 등을 밀고 오는 파도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노트] 한낮처럼 밝은 새벽.. 2022. 10. 24. 아직도 많은 날들이 내게 오지 않았다 / 김경성 아직도 많은 날들이 내게 오지 않았다 / 김경성 몽상가의 집 김경성 소리로 어둠을 읽는 두더지는 눈의 꽃술로 빛을 들이며 소리를 보는 귀를 가졌다 꿈꾸는 지상의 날들을 모두 땅 속에 묻어두고 혼자만의 방을 만들었다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 있어 귀를 열면 허락도 없이 들어오는 검은 소리 , 그때 두더지는 미로를 만들며 빠르게 멀어진다 몽상가의 집은 두더지의 방을 지나 늪에 있다 바람이 잠잠한 날에 더 잘 보이는 물속의 집과 나무들 물옥잠은 공작 깃털 같은 꽃을 피워 올려 섬을 만들고 새들도 구름을 밀고 다닌다 누구라도 집으로 가는 길을 걸으면 물을 잔뜩 머금은 나무와 하나가 되어 물의 내밀한 속에 들어가게 된다 멀리서 보면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가까이 가면 바라보는 사람의 눈 속에서 아슴해진다 당신의 이름.. 2022. 6. 19. 씨앗 연대기 / 김경성 씨앗 연대기 김경성 물속에서의 날들이 여울진다 비릿한 몽유의 시간들 물고기의 뼈가 낱낱이 해체되어 조각으로 떠다니는 숲 마음이 일렁이는 날들의 습한 시간이 낳은 날을 기억한다 파문이 온몸을 휘감아 어쩔 줄 모르던 순간 지느러미를 흔들며 빛을 내어주던 밀정의 민낯 오래 잊고 있었던 얼굴이다 살아진다, 살아간다 그 사이에서 빛을 향해 달음질친다 더 멀리 가려고 하면 할수록 푹푹 빠지는 늪, 보이지 않는 어떤 손이 잡아당기는 것 같아 촉수를 내밀어서 깊숙이 뿌리를 내린다 담을 수 없는 것까지 제 속에 들이는 물거울 속으로 물잠자리가 날아간다 한국시인협회 사화집 - 우리들의 얼굴 찾기 2 『너의 얼굴』수록 2022. 03. 22 . 펴냄 2022. 4. 13. 천천히, 깊이, 시를 읽고 싶은 당신에게 / 이동훈 지음 천천히, 깊이, 시를 읽고 싶은 당신에게 이동훈 지음 서해문집 2019년 낯선 시의 집에서 마주친 아늑하고 다정한 이야기 2022. 1. 11. 이전 1 2 3 4 5 6 7 8 ··· 3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