丹野의 깃털펜333 [체험적 시론]목울대를 두드리며 신기루처럼 오는 이 / 김경성 목울대를 두드리며 신기루처럼 오는 이 / 김경성 속성을 잃어버린 것들도 긴 시간 끝으로 가서 보면 처음의 마음이 남아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입술의 지문은 지워지고 밀물과 썰물의 주름을 타며 인도차이나반도 눈썹 끝에 올라가 있다. 모란문찻사발, 뿌리가 없는 그는 바닷속에 노숙할 집을 지으며 가끔 바다의 등지느러미에 올라가서 별이 되고 싶었으나 바닷속 둥근달로 떠 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맨발로 보낸 몇 달 동안 내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들이 지금도 참파꽃처럼 흔들린다. 새벽하늘이 빛을 바다에 내려놓는 시간이면 집을 나섰다. 간조의 시간이 오면 상어의 눈과 입이 그려져 있는 목선이 물고기를 가득 싣고 들어온다. 양동이를 든 사람들이 줄지어 바다로 들어가서 바구니 모양의 작은 배를 노 저으며 목선.. 2021. 5. 3. 김경성시인의 시론 김경성시인의 시론출처 : 박선희 시.. | https://blog.naver.com/aqz5194/222275158570 블로그 2021. 4. 23. 목이긴굴뚝새 / 김경성 목이긴굴뚝새 김경성 새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날아와서 어떤 징표를 확인하려는 듯 머물다 간다 담쟁이도 긴 몸 위에 잎을 겹쳐서 어딘가에 닿을 것만 같은 지도를 끊임없이 그려나간다 저 속에는 다 가보지 못한 길이 숨겨져 있다 지붕 위의 목이 긴 새 한 마리 저릿한 마음결 무늬와 뜨거움 다 어디로 보내버리고 긴 부리를 열어서 들리지 않는 노래만 부르고 있는 것일까 날고 싶어 지붕에 올라갔지만 평생토록 날지 못하는 저, 굴뚝을 목이긴굴뚝새라고 부르면 안 되나 먼 하늘까지 높이높이 날아다니는 그런 날이 온다면 목까지 차오른 기쁨이 넘쳐 눈물 나겠다 빈집 속에서 소멸해 가는 것들이 내는 저음의 소리를 물고 목이긴굴뚝새가 날아오른다 - 2021년 봄호 2021. 3. 7. 와온臥溫 / 김경성 와온臥溫 김경성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으니 멈추는 곳이 와온(臥溫)이다 일방통행으로 걷는 길 바람만이 스쳐갈 뿐 오래전 낡은 옷을 벗어놓고 길을 떠났던 사람들의 곁을 지나서 해국 앞에서도 멈추지 못하고 세상의 모든 바람이 비단 실에 묶여서 휘청거리는 바람의 집으로 들어선다 눈가에 맺힌 눈물 읽으려고 나를 오래 바라봤던 사람이여 그 눈빛만으로도 눈부셨던 시간 실타래 속으로 밀어 넣는다 흔들리는 것은 바람만이 아니다 흘러가버린 시간의 날줄에 걸쳐 있는 비릿한 추억, 삼키면 울컥 심장이 울리는 떨림 엮어서 갈비뼈에 걸어놓는다 휘발성의 사소한 상처는 꼭꼭 밟아서 날아가지 못하게 하고 너무 깊은 상처는 흩어지게 펼쳐놓는다 소용돌이치는 바람의 집 네 가슴 한껏 열고 들어가서 뜨거운 기억 한 두릅에 그대로 엮이고 싶은.. 2021. 1. 18. 직립으로 눕다 적립으로 눕다 김경성 빗방울에 눌려 떨어져도 고요하다 소리 지르지 아니한다 입술 같은 꽃잎, 조금이라도 넓게 펴서 햇빛 녹신하게 빨아들여 몰약 같은 향기 절정일 때 바람에 날린다 해도 서럽지 않다 직립의 시간 허물어뜨리고 낮은 곳으로 내려와 눕는다 목단꽃 떨어져도 넓은 꽃잎 접지 않는다 꽃대에서 그대로 시들어 한 번도 날아보지 못한 꽃이어도 먼 곳까지 날았던 그림자의 기억이 있다 향기 환장하게 번져나는 꽃나무 아래 서서 꽃물 배이도록 젖어들다가 아, 나도 한 장의 꽃잎이 되어 네 꽃잎 위에 눕는다 포개어진 꽃잎 위로 스쳐가는 바람 부드럽다 시집 『와온』 문학의 전당, 2010 2021. 1. 18. 날카로운 황홀함 날카로운 황홀함 / 김경성 운주사 와불을 보려면 와불 옆에 있는 소나무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낮은 산봉우리에 몸을 올려놓은 지는 해가 아니어도 와불의 등 뒤로 가만히 손을 넣은 소나무의 손이 왜 따스한지, 핏줄이 서도록 그 자리에 오래 서 있는지 여백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몸 위에 쏟아지는 햇볕 그대로 껴안고 가만히 누우면 흘러가는 시간의 말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소나무의 손 위에 누워 눈을 감았습니다 치맛자락이 날리면서 제 그림자도 와불의 옷자락에 걸렸습니다 바람에 날리는 흩어지는 말보다도 마음속에 잠겨 있는 보이지 않는 법문이 듣고 싶었습니다 마음의 눈으로 들으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발자국 무늬 겹겹이 쌓여 탑이 되고 나무와 새들의 소리는 물 흘러가는 소리 같았습니다 어느 해 씨앗이었나.. 2021. 1. 18. 오래된 그림자 -관룡사 당간지주 관룡사 당간지주 / p r a h a 오래된 그림자 / 김경성 -관룡사 당간 지주 시간이 흘러가도 차오르지 않는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의 흔적만이 켜켜이 쌓여갈 뿐 해체할 수 없는 기억은 읽을 수 없는 암각화처럼 쓸쓸하다 그대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심지를 꽂았던 가슴에는 우물 같은 자국이 있다, 그 너머로 조금씩 무너져가는 오래된 탑과 빛과 바람이 스칠 때마다 기억을 지워가는 벽화의 채색 빛처럼 대웅전 어칸 문의 경첩이 기억하고 있는 문이 열리고 닫혔던 숫자만큼 제 몸을 뚫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가슴 안으로 물컹하게 들어갔던 것, 혹은 빠져나왔던 것 흔적으로 남아 뚫린 가슴 너머로 바람 흘려보내며 푸른 깃발을 기다리고 있다 허물어져가는 시간의 눈금 위에 서서 결코 무너지지 않으리라고 온 몸에 푸른 꽃.. 2021. 1. 18. 녹슨 거울을 들고 있다 / 김경성 녹슨 거울을 들고 있다 김경성 얼굴이 언제부터 보이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은 청록의 시간이라는 것 한차례 뜨거움이 지나가고 마지막 숨을 풀어내는 연기의 끝까지 가보면 그곳에는 청록의 시간을 닦아낼 수 있는 한 줌의 재가 있다 청록을 지우고 빛이 나면 그 시간이 되돌아올 수 있을까 녹슨 거울이 제 안에 물고 있는 것은 제 속에서 거닐었던 한 사람의 생이라고 먼 시간을 건너 온 슬픔이 나를 비추고 있다 ⸻격월간 《현대시학》 2020년 9-10월호 2020. 12. 28. 당신의 시 ‘김경성 시인’ www.ccwtv.kr/article/view/704 당신의 시 '김경성 시인' 김경성 시인 약력 전북 고창 출생 . 2011 년 《미네르바》 등단 . 시집 『와온』 『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가 있음 . ... www.ccwtv.kr 2020. 12. 10. 나무의 유적 사진출처 / 동산 최병무시인님 블로그 나무의 유적 / 김경성 얼마나 더 많은 바람을 품어야 닿을 수 있을까 몸 열어 가지 키우는 나무, 그 나뭇가지 부러진 곳에 빛의 파문이 일고 말았다 둥근 기억의 무늬가 새겨지고 말았다 기억을 지우는 일은 어렵고 어려운 일이어서 끌고 가야만 하는 것 옹이 진 자리, 남아있는 흔적으로 물결무늬를 키우고 온몸이 흔들리도록 가지 내밀어 제 몸에 물결무늬를 새겨넣는 나무의 심장을 뚫고 빛이 들어간다 가지가 뻗어나갔던 옹이가 있었던 자리의 무늬는, 지나간 시간이 축적되어있는 나무의 유적이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고 무늬의 틈새로 가지가 터진다, 잎 터진다, 꽃 터진다 제 속에 유적을 품은 저 나무가 뜨겁다 나무가 빚어내는 그늘 에 들어앉은 후 나는 비로소 고.. 2020. 11. 8. 이전 1 ··· 4 5 6 7 8 9 10 ··· 3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