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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와온』

오래된 그림자 -관룡사 당간지주

by 丹野 2021. 1. 18.

관룡사 당간지주 / p r a h a

 

 

오래된 그림자 / 김경성

-관룡사 당간 지주

 

 

시간이 흘러가도 차오르지 않는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의

흔적만이 켜켜이 쌓여갈 뿐

해체할 수 없는 기억은 읽을 수 없는 암각화처럼 쓸쓸하다

그대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심지를 꽂았던 가슴에는

우물 같은 자국이 있다, 그 너머로

조금씩 무너져가는 오래된 탑과

빛과 바람이 스칠 때마다

기억을 지워가는 벽화의 채색 빛처럼

대웅전 어칸 문의 경첩이 기억하고 있는

문이 열리고 닫혔던 숫자만큼

제 몸을 뚫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가슴 안으로 물컹하게 들어갔던 것, 혹은 빠져나왔던 것

흔적으로 남아

뚫린 가슴 너머로 바람 흘려보내며

푸른 깃발을 기다리고 있다

허물어져가는 시간의 눈금 위에 서서

결코 무너지지 않으리라고

온 몸에 푸른 꽃 피도록 오래 서 있다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구룡산(九龍山) 중턱에 있는 절.
** 당간지주 : 절의 성격을 나타내는 지지대

 

- 시집 『와온』 문학의 전당,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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