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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황홀함 / 김경성
운주사 와불을 보려면
와불 옆에 있는 소나무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낮은 산봉우리에 몸을 올려놓은
지는 해가 아니어도
와불의 등 뒤로 가만히 손을 넣은 소나무의 손이
왜 따스한지, 핏줄이 서도록
그 자리에 오래 서 있는지 여백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몸 위에 쏟아지는 햇볕 그대로 껴안고 가만히 누우면
흘러가는 시간의 말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소나무의 손 위에 누워 눈을 감았습니다
치맛자락이 날리면서 제 그림자도 와불의 옷자락에 걸렸습니다
바람에 날리는 흩어지는 말보다도
마음속에 잠겨 있는 보이지 않는 법문이 듣고 싶었습니다
마음의 눈으로 들으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발자국 무늬 겹겹이 쌓여 탑이 되고
나무와 새들의 소리는 물 흘러가는 소리 같았습니다
어느 해 씨앗이었나
땅속에서 침묵하는 수많은, 살아 있음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순간의 날카로운 황홀함을 마음의 책장에 새겼습니다
와불과
소나무의 손과
바람과
와불의 몸 위 에 걸쳐 있는 그림자 흔들리고
제 안의 침묵의 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시집 『와온』 문학의 전당,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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