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룡사 당간지주 / p r a h a
오래된 그림자 / 김경성
-관룡사 당간 지주
시간이 흘러가도 차오르지 않는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의
흔적만이 켜켜이 쌓여갈 뿐
해체할 수 없는 기억은 읽을 수 없는 암각화처럼 쓸쓸하다
그대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심지를 꽂았던 가슴에는
우물 같은 자국이 있다, 그 너머로
조금씩 무너져가는 오래된 탑과
빛과 바람이 스칠 때마다
기억을 지워가는 벽화의 채색 빛처럼
대웅전 어칸 문의 경첩이 기억하고 있는
문이 열리고 닫혔던 숫자만큼
제 몸을 뚫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가슴 안으로 물컹하게 들어갔던 것, 혹은 빠져나왔던 것
흔적으로 남아
뚫린 가슴 너머로 바람 흘려보내며
푸른 깃발을 기다리고 있다
허물어져가는 시간의 눈금 위에 서서
결코 무너지지 않으리라고
온 몸에 푸른 꽃 피도록 오래 서 있다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구룡산(九龍山) 중턱에 있는 절.
** 당간지주 : 절의 성격을 나타내는 지지대
- 시집 『와온』 문학의 전당,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