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847 감각의 온도 / 안차애 감각의 온도—명리시편 10, 계유일주(癸酉日柱) 안차애검은 말의 수위에 잠겨있었다.납작 눌린 것이 기어이 뾰족해진다. 어둠에서 젖 냄새가 났다.한 방향을 만지려고 나머지 방향을 무너뜨릴 때처럼감각되지 않는 감각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엄마는 금기어였으므로안구의 뒤편이 대낮에도 자주 튀어나오고, 감각 없는 발목을 드문드문 꽂고 다니면발열체도 없는,이상한 온도가 떠다닌다. 검정을 그었는데순교자의 피처럼 하얀 생각들이 흘러나왔다.바탕색이 없어서 따뜻했다. 엄마는 반대말이 없었으므로막연하지 않은 말들이 자꾸 막연해졌다.키 대신 송곳니가 자꾸 자라는 기분이었다. —계간 《시와 사상》 2025 봄호---------------------안차애 / 200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시.. 2025. 6. 9. 디아스포라Diaspora / 김일연 디아스포라Diaspora 김일연 벌통을 메고서 길 따라 계절 따라늘그막에 아버지는 양봉이 꿈이었어요나에게 꽃피는 고향을 만들어 주시려고 베어져 흔적 없는 나무를 안아보았어요바람결에 묻어있는 꽃내음 맡아보았어요새들과 손을 잡고서 돌아오곤 하던 길에 핏물이 배어나는 기억을 닦아주었어요꼬부라져 지쳐있는 침묵에 입맞췄습니다다 잊고 행복하라고 인사를 나누었어요 만주로 전쟁터로 떠돌던 우리 아버지못 이룬 마지막 꿈은 벌 치는 것이었어요나에게 꽃피는 고향을 만들어 주시려던 ―계간 《시결》 2025 여름호---------------------김일연 / 1955년 대구 출생. 경북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졸업. 1980년 《시조문학》으로 등단. 시조집 『명창』『먼 사랑』『꽃벼랑』『ALL TH.. 2025. 6. 9. 자전거 핸들이 사슴의 뿔이라면 외 2편 / 박수빈 자전거 핸들이 사슴의 뿔이라면 (외 2편) 박수빈 안장은 머리가 되거나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담장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들판을 달리고픈 사슴이어쩌다 뿔의 방향 잃었을까 따라오는 소리 우꾹이벌국, 딸국으로도 들리는데선생님은 y=f(x)라고 했다 그때 별을 그리는 마음 헤아렸더라면학교 가는 길에 돌멩이를 툭 차지 않았을 텐데 돌멩이 혼자 구석에서 울까 봐 지각하던 날워극, 부큭으로도 느끼며 나는 그늘로 갔다 차츰 돌멩이는 모과를 닮아가고뿔은 좌우 상관없고나의 내일은 그저 풍경이어도 괜찮았다 어디로 가는지 빛깔도 다르면서이하동문 묻어간 시절들 바퀴 잃고 이제 물 건너는 사슴휘도는 굽이에 수심 깊어진다 고개 들어 뿔 닮은 나뭇가지를 본다 검은 사람들이 내려온다 11월처럼 내려온다 10월이거나.. 2025. 4. 27. 나무의 발성법 (외 2편) / 박완호 나무의 발성법 (외 2편) 박완호 씨앗이라고, 조그맣게 입을 오므리고뿌리 쪽으로 가는 숨통을 가만히 연다.새순이라고 줄기라고 천천히좁은 구멍으로 숨을 불어 넣는다.길어지는 팔다리를 쭉쭉 내뻗으며돋아나는 가지들을 허공 쪽으로흔들어 본다. 흐릿해지는 하늘 빈자리연두에서 초록으로 난 길을 트이며이파리가 돋고 꽃송이들이 폭죽처럼 터지는 순간을 위해아직은 나비와 새들을 불러들이지 않기로 한다.다람쥐가 어깨를 밟고 가는 것도몰래 뱃속에 숨겨둔 도토리 개수가몇 개인지 모르는 척 넘어가기로 한다.하늘의 빈틈이 다 메워질 때쯤무성한 가지들을 잘라내고 더는빈 곳을 채워 나갈 의미를 찾지 못할 만큼한 생애가 무르익었을 무렵가지를 줄기를 밑동까지를 하나씩 비워가며기둥을 세우고 집을 만들고 울타리를 두르고아무나 앉을 수 .. 2025. 4. 17. 그 섬 / 최경선 https://www.cnp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72 [최경선] 그 섬(문화앤피플 뉴스) = 그 섬최경선 배 드나들 때마다 섬은 출렁거렸다 뱃고동 울리면 밭일하던 아낙과 그물 손질하던 아재도 선착장으로 가는 시간, 잘잘 끓는 방에 있던 노인도 갱번에 나와 뭍 www.cnpnews.co.kr 2025. 4. 17. 매향리 꽃말을 쓰다 / 최경선 https://www.cnp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15&page=2&total=1444 [최경선] 매향리 꽃말을 쓰다매향리 꽃말을 쓰다최경선다가가지 않고는그 내밀함을 알 수 없는격정의 파도 출렁였던 곳매향리 쿠니 사격장에서 바라본철조망 너머나부죽 엎드린 농섬을 눈앞에 두고움츠리고 있던 날들낮www.cnpnews.co.kr 2025. 4. 17. ㄱ과 ㅎ 사이 / 조하은 [조하은] ㄱ과 ㅎ 사이 - https://naver.me/x3jz7SbB [조하은] ㄱ과 ㅎ 사이(문화앤피플)=조하은 태풍이 여러 차례 휘몰아쳤다비틀거려도어느 쪽으로든 걸어가야 했다머릿속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손목을 머리 밑에 넣고 몸을 동그랗게 말고 나서야 잠www.cnpnews.co.kr 2025. 4. 17. 나무의 발성법 외 2편 / 박완호 나무의 발성법 (외 2편) 박완호 씨앗이라고, 조그맣게 입을 오므리고뿌리 쪽으로 가는 숨통을 가만히 연다.새순이라고 줄기라고 천천히좁은 구멍으로 숨을 불어 넣는다.길어지는 팔다리를 쭉쭉 내뻗으며돋아나는 가지들을 허공 쪽으로흔들어 본다. 흐릿해지는 하늘 빈자리연두에서 초록으로 난 길을 트이며이파리가 돋고 꽃송이들이 폭죽처럼 터지는 순간을 위해아직은 나비와 새들을 불러들이지 않기로 한다.다람쥐가 어깨를 밟고 가는 것도몰래 뱃속에 숨겨둔 도토리 개수가몇 개인지 모르는 척 넘어가기로 한다.하늘의 빈틈이 다 메워질 때쯤무성한 가지들을 잘라내고 더는빈 곳을 채워 나갈 의미를 찾지 못할 만큼한 생애가 무르익었을 무렵가지를 줄기를 밑동까지를 하나씩 비워가며기둥을 세우고 집을 만들고 울타리를 두르고아무나 앉을 수 .. 2025. 4. 11. 나는 가령의 생에서 왔다_멀티버스 / 박지웅 나는 가령의 생에서 왔다_멀티버스 박지웅 어느 날이라는 새가 있다잎사귀만한 새 안에 내가 잠들어 있다 생전에 내 모든 날은 평범했다어느 날과 일요일을 지내거나 낮달로 날려 보내거나돌무덤에 어느 날을 묻어준 것도그럴 만하거나 그러지 않아도 되는 일들 아무 일 없는 오래전 어느 날을 무덤으로 쓰는,나는 참 이상한 꿈어느 날을 새장에 가두고 어느 날로부터 달아나려는 신을 만났다, 샛강은 없는데 물소리를 건너가는 다리가 희미해져 더 내딛지 못하고 허우적허우적 위독한 밤을 넘기고그처럼 환한 대낮은 처음 보았다 신은 어느 날을 얌전하고 평범한 흰 깃털의 새라고 소개했지만가만히 보니 어느 날은 뒷모습만 남은 새, 아주 얇은 새라서 종이배로 접어 냇가에 띄우면 훨훨 흘러가는 새 신은 혼잣말을 한다, 어느 날은.. 2025. 3. 27. 물의 아이 / 안차애 물의 아이―명리시편 60. 계해일주(癸亥日柱) 안차애 몇 생을 흐른 것인지,물도 오래 흐르면 화석이 되는 걸까 물이 물을 씻어서 낸 색이아이와 노인을 번갈아 입는다 남들은 투명이라 부르지만주저흔보다 오래된 켜 켜의 표정이다 마녀처럼 미녀처럼 새벽안개를 헤치고 나타나산책 같이 하실래요건너편 동에 사시죠명랑하지는 않지만 무심무심 몇 굽이 같이 흐른다 먼 길 떠났다 돌아오는 물소리나, 푸른 소沼의 한식경처럼어둠에 섞여 있어도 어둡지 않고고인 웅덩이에서도 초점을 밀어 올린다 성소를 만난 죄인의 심정이 이럴까내 죄의 연대와 내력을 주섬주섬 풀어놓고 싶다 오래 외로워서 많이 검어졌다고우는 것보단 죄 짓는 걸 택했다고,밀린 고해성사라도 하고 싶었다 헤어질 모퉁이에선물의 뼈 하나 툭 던져주듯낮은 인사를, .. 2025. 3. 18. 이전 1 2 3 4 ··· 8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