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845 자전거 핸들이 사슴의 뿔이라면 외 2편 / 박수빈 자전거 핸들이 사슴의 뿔이라면 (외 2편) 박수빈 안장은 머리가 되거나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담장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들판을 달리고픈 사슴이어쩌다 뿔의 방향 잃었을까 따라오는 소리 우꾹이벌국, 딸국으로도 들리는데선생님은 y=f(x)라고 했다 그때 별을 그리는 마음 헤아렸더라면학교 가는 길에 돌멩이를 툭 차지 않았을 텐데 돌멩이 혼자 구석에서 울까 봐 지각하던 날워극, 부큭으로도 느끼며 나는 그늘로 갔다 차츰 돌멩이는 모과를 닮아가고뿔은 좌우 상관없고나의 내일은 그저 풍경이어도 괜찮았다 어디로 가는지 빛깔도 다르면서이하동문 묻어간 시절들 바퀴 잃고 이제 물 건너는 사슴휘도는 굽이에 수심 깊어진다 고개 들어 뿔 닮은 나뭇가지를 본다 검은 사람들이 내려온다 11월처럼 내려온다 10월이거나.. 2025. 4. 27. 나무의 발성법 (외 2편) / 박완호 나무의 발성법 (외 2편) 박완호 씨앗이라고, 조그맣게 입을 오므리고뿌리 쪽으로 가는 숨통을 가만히 연다.새순이라고 줄기라고 천천히좁은 구멍으로 숨을 불어 넣는다.길어지는 팔다리를 쭉쭉 내뻗으며돋아나는 가지들을 허공 쪽으로흔들어 본다. 흐릿해지는 하늘 빈자리연두에서 초록으로 난 길을 트이며이파리가 돋고 꽃송이들이 폭죽처럼 터지는 순간을 위해아직은 나비와 새들을 불러들이지 않기로 한다.다람쥐가 어깨를 밟고 가는 것도몰래 뱃속에 숨겨둔 도토리 개수가몇 개인지 모르는 척 넘어가기로 한다.하늘의 빈틈이 다 메워질 때쯤무성한 가지들을 잘라내고 더는빈 곳을 채워 나갈 의미를 찾지 못할 만큼한 생애가 무르익었을 무렵가지를 줄기를 밑동까지를 하나씩 비워가며기둥을 세우고 집을 만들고 울타리를 두르고아무나 앉을 수 .. 2025. 4. 17. 그 섬 / 최경선 https://www.cnp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72 [최경선] 그 섬(문화앤피플 뉴스) = 그 섬최경선 배 드나들 때마다 섬은 출렁거렸다 뱃고동 울리면 밭일하던 아낙과 그물 손질하던 아재도 선착장으로 가는 시간, 잘잘 끓는 방에 있던 노인도 갱번에 나와 뭍 www.cnpnews.co.kr 2025. 4. 17. 매향리 꽃말을 쓰다 / 최경선 https://www.cnp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15&page=2&total=1444 [최경선] 매향리 꽃말을 쓰다매향리 꽃말을 쓰다최경선다가가지 않고는그 내밀함을 알 수 없는격정의 파도 출렁였던 곳매향리 쿠니 사격장에서 바라본철조망 너머나부죽 엎드린 농섬을 눈앞에 두고움츠리고 있던 날들낮www.cnpnews.co.kr 2025. 4. 17. ㄱ과 ㅎ 사이 / 조하은 [조하은] ㄱ과 ㅎ 사이 - https://naver.me/x3jz7SbB [조하은] ㄱ과 ㅎ 사이(문화앤피플)=조하은 태풍이 여러 차례 휘몰아쳤다비틀거려도어느 쪽으로든 걸어가야 했다머릿속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손목을 머리 밑에 넣고 몸을 동그랗게 말고 나서야 잠www.cnpnews.co.kr 2025. 4. 17. 나무의 발성법 외 2편 / 박완호 나무의 발성법 (외 2편) 박완호 씨앗이라고, 조그맣게 입을 오므리고뿌리 쪽으로 가는 숨통을 가만히 연다.새순이라고 줄기라고 천천히좁은 구멍으로 숨을 불어 넣는다.길어지는 팔다리를 쭉쭉 내뻗으며돋아나는 가지들을 허공 쪽으로흔들어 본다. 흐릿해지는 하늘 빈자리연두에서 초록으로 난 길을 트이며이파리가 돋고 꽃송이들이 폭죽처럼 터지는 순간을 위해아직은 나비와 새들을 불러들이지 않기로 한다.다람쥐가 어깨를 밟고 가는 것도몰래 뱃속에 숨겨둔 도토리 개수가몇 개인지 모르는 척 넘어가기로 한다.하늘의 빈틈이 다 메워질 때쯤무성한 가지들을 잘라내고 더는빈 곳을 채워 나갈 의미를 찾지 못할 만큼한 생애가 무르익었을 무렵가지를 줄기를 밑동까지를 하나씩 비워가며기둥을 세우고 집을 만들고 울타리를 두르고아무나 앉을 수 .. 2025. 4. 11. 나는 가령의 생에서 왔다_멀티버스 / 박지웅 나는 가령의 생에서 왔다_멀티버스 박지웅 어느 날이라는 새가 있다잎사귀만한 새 안에 내가 잠들어 있다 생전에 내 모든 날은 평범했다어느 날과 일요일을 지내거나 낮달로 날려 보내거나돌무덤에 어느 날을 묻어준 것도그럴 만하거나 그러지 않아도 되는 일들 아무 일 없는 오래전 어느 날을 무덤으로 쓰는,나는 참 이상한 꿈어느 날을 새장에 가두고 어느 날로부터 달아나려는 신을 만났다, 샛강은 없는데 물소리를 건너가는 다리가 희미해져 더 내딛지 못하고 허우적허우적 위독한 밤을 넘기고그처럼 환한 대낮은 처음 보았다 신은 어느 날을 얌전하고 평범한 흰 깃털의 새라고 소개했지만가만히 보니 어느 날은 뒷모습만 남은 새, 아주 얇은 새라서 종이배로 접어 냇가에 띄우면 훨훨 흘러가는 새 신은 혼잣말을 한다, 어느 날은.. 2025. 3. 27. 물의 아이 / 안차애 물의 아이―명리시편 60. 계해일주(癸亥日柱) 안차애 몇 생을 흐른 것인지,물도 오래 흐르면 화석이 되는 걸까 물이 물을 씻어서 낸 색이아이와 노인을 번갈아 입는다 남들은 투명이라 부르지만주저흔보다 오래된 켜 켜의 표정이다 마녀처럼 미녀처럼 새벽안개를 헤치고 나타나산책 같이 하실래요건너편 동에 사시죠명랑하지는 않지만 무심무심 몇 굽이 같이 흐른다 먼 길 떠났다 돌아오는 물소리나, 푸른 소沼의 한식경처럼어둠에 섞여 있어도 어둡지 않고고인 웅덩이에서도 초점을 밀어 올린다 성소를 만난 죄인의 심정이 이럴까내 죄의 연대와 내력을 주섬주섬 풀어놓고 싶다 오래 외로워서 많이 검어졌다고우는 것보단 죄 짓는 걸 택했다고,밀린 고해성사라도 하고 싶었다 헤어질 모퉁이에선물의 뼈 하나 툭 던져주듯낮은 인사를, .. 2025. 3. 18. 파란 우체통 (외 1편) / 윤옥주 파란 우체통 (외 1편) 윤옥주 양고기가 구덕구덕 말라 가는 헛간을 지나면 진한 안개를 밟고 미끄러진 적 있는 우체통이 있다 더듬더듬 써 내려가던 그 시절의 편지는 우슬이 되어 희미하고 먼 어느 창문에 가 붙어 있다 눈가에서 말라 가는 잠자리 날개 잡을 수 없는 세계를 이어 주던 길목을 기웃거리고 안개를 딛고 서 있는 낭떠러지 앞에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딘다 청동거울의 뒷면으로 저녁이 온다 구부러진 길에 도화지의 파란 물감이 굳어 있다 나는 어디쯤 수신되고 있는가 지평선은 소실점을 향해 길어지고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예배당의 종소리 홀로 창가를 서성이는 편지들이 잠자리의 날개를 지나 내게 도착한다 눈사람과 염소 눈사람이 염소 곁에 배경 화면처럼 서 있다 눈사람은 눈이 부실 때마다 .. 2025. 3. 8. 아름답고 기이한 삶의 방식 / 조용미 아름답고 기이한 삶의 방식 조용미 기차가 지나가고 잠시 후 또 기차가 왔는데기차 안에 있는 누군가혼이 빠진 듯한 얼굴로 내게 이렇게 말해요 먼저 지나간 기차를 왜 타지 않았냐고,당신이 그 기차를 타지 않아서나는 곧 죽어야 한다고 이 역에서 당신을 보게 되면,죽게 된다는꿈의 예언을 받았다고 현재란 내게 그런 거예요 나는 불길한 꿈에서 깨어났고 그가 꾸었다는 꿈의 꿈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수많은 꿈이 우리를 삶 속으로데려옵니다 빈틈없는 현재가 우리를꿈속으로 데려갑니다 서로 스치는 순간이 었었을 거예요꿈과 현재가그게 현재 쪽인지 꿈 쪽인지는중요하지 않아요 이 크나큰 세상은 내게 그런 거예요기이하고 아름답지만 언제나다정하지는 않습니다 타야 할 기차를 놓치고 사람을 잃고, 다시 잠들어요 .. 2025. 3. 8. 이전 1 2 3 4 ··· 8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