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아이
―명리시편 60. 계해일주(癸亥日柱)
안차애
몇 생을 흐른 것인지,
물도 오래 흐르면 화석이 되는 걸까
물이 물을 씻어서 낸 색이
아이와 노인을 번갈아 입는다
남들은 투명이라 부르지만
주저흔보다 오래된 켜 켜의 표정이다
마녀처럼 미녀처럼 새벽안개를 헤치고 나타나
산책 같이 하실래요
건너편 동에 사시죠
명랑하지는 않지만 무심무심 몇 굽이 같이 흐른다
먼 길 떠났다 돌아오는 물소리나, 푸른 소沼의 한식경처럼
어둠에 섞여 있어도 어둡지 않고
고인 웅덩이에서도 초점을 밀어 올린다
성소를 만난 죄인의 심정이 이럴까
내 죄의 연대와 내력을 주섬주섬 풀어놓고 싶다
오래 외로워서 많이 검어졌다고
우는 것보단 죄 짓는 걸 택했다고,
밀린 고해성사라도 하고 싶었다
헤어질 모퉁이에선
물의 뼈 하나 툭 던져주듯
낮은 인사를,
―계간 《시와 사상》 2024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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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차애 / 200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초록을 엄마라고 부를 때』 『치명적 그늘』 『불꽃나무 한 그루』, 교육도서 『시인 되는 11가지 놀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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