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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물의 아이 / 안차애

by 丹野 2025. 3. 18.

물의 아이

명리시편 60. 계해일주(癸亥日柱)

 

   안차애

 

 

 

몇 생을 흐른 것인지,

물도 오래 흐르면 화석이 되는 걸까

 

물이 물을 씻어서 낸 색이

아이와 노인을 번갈아 입는다

 

남들은 투명이라 부르지만

주저흔보다 오래된 켜 켜의 표정이다

 

마녀처럼 미녀처럼 새벽안개를 헤치고 나타나

산책 같이 하실래요

건너편 동에 사시죠

명랑하지는 않지만 무심무심 몇 굽이 같이 흐른다

 

먼 길 떠났다 돌아오는 물소리나푸른 소의 한식경처럼

어둠에 섞여 있어도 어둡지 않고

고인 웅덩이에서도 초점을 밀어 올린다

 

성소를 만난 죄인의 심정이 이럴까

내 죄의 연대와 내력을 주섬주섬 풀어놓고 싶다

 

오래 외로워서 많이 검어졌다고

우는 것보단 죄 짓는 걸 택했다고,

밀린 고해성사라도 하고 싶었다

 

헤어질 모퉁이에선

물의 뼈 하나 툭 던져주듯

낮은 인사를,

 

 

               ―계간 시와 사상》 2024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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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차애 / 200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시집 초록을 엄마라고 부를 때』 『치명적 그늘』 『불꽃나무 한 그루교육도서 시인 되는 11가지 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