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내린 숲
정현우
식탁 위에 은수저가 잡히지 않는다
나의 꿈 바깥으로 칼날이 지나간다
부드러운 빵이 놓이고
밤은 완연하고 나무들의 걸음을 옮길 수 없다
여긴 아직 우리 집이야, 창밖 숲이 일어서고 검은 숲의 은유가 잠을 지운다
활강하는 흰 매들과 혼곤히 시작되는 숲의 시작과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햇빛이 혼들리는 물결,
빛을 도래하는 잎맥의 혈관이 투명하다
심장은 몸 밖으로 자라는 것,
빛으로 짜인 모자이크,
새는 검푸른 심장을 끌어안고 햇살은 어둠을 거둬들이고, 죽은 당신의 꿈속을 지나가는 함구 속으로 자유의 집과 동물과 언덕과 나무들을, 이 숲의 시간은 잎이 지는 반대쪽으로 흐른다 과거로 이어지는 시간을 생각하며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손거울이 보인다 미간에 금이 간다 서로의 깊이로 겨울이 그림자로 불타오른다 올려다보다가 거울 뒤로 보인다
다시 돌아오지 못한 타다 남은 계절이
흩트리고 싶은
모자이크,
—계간 《문파》 2024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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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우/ 1986년 경기도 송탄 출생.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시 등단.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소멸하는 밤』. 산문집 『우리는 약속도 없이 사랑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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