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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김경성 - 근작시

바다가 넘어갔다 / 김경성

by 丹野 2023. 2. 19.

 

 

 

 

바다가 넘어갔다

 

김경성

 

 

달이 기울어지기 전 부풀어진 가슴으로

바다를 다 품은 밤

맨살이 드러나도록 쓸려가는 바닷물, 끝내

한마디 말도 못 하고

목 언저리 쇄골을 지나 배꼽까지 드러냈다

 

갯고랑을 따라 조금 늦게 가는 바닷물 속으로

투망을 든 사람들이 첨벙첨벙 걸어 들어갔다

 

낙지를 움켜쥐고 달빛에 비춰보는 사람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생명들의 무너짐을

해루질이라고 했다

 

바다가 넘어갔다

 

백사장을 넘고

뻘밭을 넘고

수평선을 넘어 멀리멀리 갔다

 

바닷속으로 나를 끌어당기며 가던 바다와 어느 순간

하나가 되었다

 

함께라는 그 말은 그때 필요했던 것

보름사리 바다가 열리는 크레바스 같은 시간

뒤엉켜서 내는 소리가 출렁거렸다

 

달빛이 오래 비춰 주었다

 

 

 

 - 계간 문파 2022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