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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김경성 - 근작시

무자치 / 김경성

by 丹野 2022. 11. 1.

무자치
 
김경성
 
 
꺾이지 않는 몸이어서
구부리거나 똬리를 틀어서 몸으로 말한다
 
모서리가 없는 것들이 부드럽고 온화하다고 하지만 
꼿꼿이 서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나뭇가지를 타고 바라보아도 언제나 어느 한 곳은 휘어져 있고
몸속에 독이 없어도 세상은 나를 똑바로 보지 않는다
 
빗방울도 화살이 되어 꽃잎을 떨어트리는데
내 몸도 길게 펴서 화살이 되어보자고 단 한 번에 쭈욱
앞으로 나아가 보려 하지만
저절로 휘어지는 몸 어찌할 수 없는 
 
너는 너 나는 나
네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
그 무엇으로도 닿을 수 없는
너와 나라는 본질
 
자꾸만 구부러지는 몸
지나가는 자리마다 긴 파문이 인다
 
물옷을 벗고 저수지 둑을 넘어갈 때에도
휘어져야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나는 한 마리 무자치다
 
 
 
 
- 《경희문학》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