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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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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r a h a 새 / 나호열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어디로 가야 하는지 붉게 타오르는 서녘 노을 속으로 새들은 느낌표 같은 몸을 하늘에 새겨두고 사라진다 뚝뚝 그 느낌표들은 어둠을 받아 별로 빛나기도 하고 아득하게 지상으로 차갑게 낙하하기도 한다 흙으로 빚어진 몸은 무너질 때도 아름답다 아무 것.. 2007. 5. 29.
公山城에서 / 나호열 p r a h a 公山城에서 / 나호열 평생을 땅파는 일에 투신한 고고학자와 공산성에 오른다 멀리 내다보는 일이 꼭 앞으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의 굽은 등을 바라볼 때 파묻힌 것들의 숨결을 듣는 수없이 많았던 그의 屈身을 생각한다. 감나무에 매달린 감들이 익을 대로 익어 툭툭 눈물 떨어.. 2007. 5. 29.
가슴이 운다 / 나호열 가슴이 운다 / 나호열 거역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 예정되어 있으나 슬그머니 뒤로 밀쳐놓은 정답이 없다고 스스로 위안한 풀지 않은 숙제처럼 달려드는 파도가 있다 못질 소리 똑닥거리는 시계의 분침 소리 바위가 모래로 무너져 내리는 소리 이 나이에 사랑은 무슨 이 나이에 이별은 무슨 가슴이 울 .. 2007. 5. 29.
가스페를 아십니까? / 나호열 p r a h a 가스페를 아십니까? / 나호열 하늘을 향해 그 아무 것도 아닌 허공을 향해 팔을 내뻗는 무엇을 움켜쥐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주먹을 내뻗는 플라타나스 가지들을 뎅강뎅겅 잘라낼 때 이 도시에는 일기예보보다 먼저 봄이 시작되는 것이다. 가스페를 아십니까? 이 말은 가스페는 어디로 갑니.. 2007. 4. 15.
눈빛으로 말하다 / 나호열 눈빛으로 말하다 / 나호열 떠나보지 않은 사람에게 기다려 보지 않은 사람에게 손아귀에 힘을 주고 잔뜩 움켜쥐었다가 제 풀에 놓아버린 기억이 없는 사람에게 그리움은 찾아오지 않는다 달빛을 담아 봉한 항아리를 가슴에 묻어놓고 평생 말문을 닫은 사람 눈빛으로 보고 눈빛으로 듣는다 그리움은 .. 2007. 4. 15.
사막의 문 / 나호열 쿠무타쿠 사막 / 프라하 사막의 문 / 나호열 어제는 힘없이 초식의 어금니가 부러지고 어머니는 자꾸만 기억을 놓으신다 익숙하게 여닫던 문 삐걱거린다 안과 밖의 경계가 신기루만큼 멀다 마음의 지도는 비어 있다 그 속에 나는 구름을 그린다 헐거운, 낡아가는, 틈, 깊어지는 눈, 기다리는, 견디는, .. 2007. 4. 15.
너에게 묻는다 / 나호열 사진 / 프라하 너에게 묻는다 / 나호열 유목의 하늘에 양떼를 풀어 놓았다 그리움을 갖기 전의 일이다 낮게 깔려있는 하늘은 늘 푸르렀고 상형문자의 구름은 천천히 자막으로 흘러갔던 것인데 하늘이 펄럭일 때 마다 먼 곳에서 들리는 양떼 울음을 들었던 것이다 목동이었던 내가 먼저 집을 잃었던 모.. 2007. 4. 15.
문 / 나호열 praha 문 / 나호열 그가 문을 닫고 떠날 때마다 나의 생애는 오래 흔들거렸다 위태롭게 걸려 있던 별들이 우수수 떨어지기도 했고 정전의 암흑이 발자국들을 엉키게도 했다 세차게 닫히는 쿵하는 소리가 눈물을 한웅큼씩 여물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 두렵고도 즐거운 일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역방향으로.. 2007. 3. 26.
나의 노래 / 나호열 사진/프라하나의 노래 / 나호열 가슴에 알을 품고 있어 누가 그런 거짓말을 내게 했나 알이 깨지고 그 때마다 가슴에 창이 하나씩 생겨나긴 했지만 나는 그 새들을 보지 못했다 내가 보듬고 왔던 것은 빈 둥지 얼음장 같은 부화되지 않은 묵언 두 팔로 허공을 끌어안을 때일획을 그으며 내 생의 좌측에.. 2007. 3. 26.
꽃이 피었다 / 나호열 꽃이 피었다 / 나호열 바라보면 기쁘고도 슬픈 꽃이 있다 아직 피어나지 않아 이름조차 없는 꽃 마음으로 읽고 눈으로 덮어버리는 한 잎의 향기와 빛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향일성 向日性의 시간의 촛대 위에 담쟁이 넝쿨 같은 촛불을 당기는 일 내 앞에서 너울대는 춤추는 얼굴 그 그.. 2007. 3. 26.
서산 마애불, 天竺, 가지치기 서산 마애불 / 나호열 나그네는 길을 묻지 않는다.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서 털석 바람이 주저앉은 자리에 노을이 내린다. 따뜻한 움막이 바로 저기인데 먼 길을 돌아서 가야 한다. 그 언 손을 이리 주게나, 내 가슴도 얼음장이지만 비집고 넣을 틈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 저기, 저 나무 참 아름답.. 2007. 3. 14.
기억의 저편 / 나호열 기억의 저편 / 나호열 혀에서 태어나서 말들은 가슴으로 돌아와 쌓이거나 버려진다 독을 품은 말들은 부메랑처럼 제 가슴에 닿아 가슴을 죽이고 노래로 달려 나간 말들은 파랑새가 되어 소리가 나지 않는 생의 건반 위에 발자국을 남긴다 이제는 바람이 묻어 있는 기억이 싫어 말의 씨앗을 퉤퉤 뱉어.. 2007.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