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열 시인/詩441 모란꽃 무늬 화병 / 나 호 열 모란꽃 무늬 화병 나호열 한 겨울 낟알 하나 보이지 않는 들판 한 가운데 외다리로 서서 잠든 두루미처럼 하얗고 목이 긴 화병이 내게 있네 영혼이 맑으면 이 생에서 저 생까지 환히 들여다보이나 온갖 꽃들 들여다 놓아도 화병만큼 빛나지 않네 빛의 향기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구문 반의 발자국 .. 2010. 9. 23. 인디고Indigo 책방 / 나호열 인디고Indigo 책방 / 나호열 요크데일, 인디고 책방 2층 창가에 앉아 있다 저 멀리 윌슨 역에 서성거리는 그림자들 조합되지 않은 기호들 같다 401 익스프레스웨이와 다운타운으로 들어가는 길 나는 고개를 돌려 길을 되짚어야 한다 길을 되짚으려면 시선은 가지런한 서가에 아프게 가 닿는다 저 미지의, .. 2010. 9. 14. 우체통은 멀리 있다 / 나호열 쿠트나호라 구시가지에서 / p r a h a 우체통은 멀리 있다 / 나호열 하느님의 역사처럼 아무도 모르게 문패를 달아놓는 일은 아름답다 부르지 않아도 구석진 자리 마다하지 않고 제자리 골라 명상에 잠긴 풀꽃들처럼 나의 집에 또 다른 이름을 달아놓는 일은 평화롭다 그도 나의 이름을 문 앞에 걸어놓았.. 2010. 9. 7. 섬 · 1 / 나호열 p r a h a 섬 · 1 / 나호열 시간은 오랫동안 나를 길들였다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사랑하도록 족쇄를 채우지 않았다 희박해져 가는 공기와 마찬가지로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았다 내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을 때 등 뒤에는 어스름이 덮혀 있었다 문득 뒤를 돌아다 보았을 때 내가 머물던 그 곳은 흔적조.. 2010. 8. 21. 눈물 / 나호열 눈물 나호열 길에도 허방다리가 있고 나락도 있다고 하여 고개 숙이고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눈물은 꽃 지고 잎 지고 나서야 익을대로 익는 씨앗처럼 고개를 숙여야 숨을 죽였다 길은 시작도 끝도 없어 우리는 길에서 나서 길에서 죽는다고 꿈에서나 배웠을까 문득 내가 한 자리에 멈추.. 2010. 8. 17. 안아 주기 / 나호열 프라하 안아주기 / 나호열 어디 쉬운 일인가 나무를, 책상을, 모르는 사람을 안아준다는 것이 물컹하게 가슴과 가슴이 맞닿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대, 어둠을 안아보았는가 무량한 허공을 안아보았는가 슬픔도 안으면 따뜻하다 미움도 안으면 따뜻하다 가슴이 없다면 우주는 우주가 아니다 2010. 8. 13. 새싹을 노래함 · 2 / 나호열 새싹을 노래함 · 2 / 나호열 눈이 있는가 굳센 팔이 있는가 어디 힘차게 디딜 다리 힘이 있는가 견고한 땅을 밀어내며 얼굴을 내미는 새싹은 오래 전 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봄으로 말미암아 땅의 틈새가 벌어지기를 기다렸던 것이 아니다 오래 전 부터 얼음과 눈으로 덮혀있는 침묵을 조금씩 .. 2010. 8. 9. 너에게 묻는다 / 나호열 너에게 묻는다 / 나호열 유목의 하늘에 양떼를 풀어 놓았다그리움을 갖기 전의 일이다낮게 깔려있는 하늘은 늘 푸르렀고상형문자의 구름은 천천히 자막으로 흘러갔던 것인데하늘이 펄럭일 때 마다 먼 곳에서 들리는 양떼 울음을 들었던 것이다목동이었던 내가 먼저 집을 잃었던 모양이다잃었거나 잊.. 2010. 8. 2. 연꽃 / 나호열 p r a h a 연꽃 나호열 진흙에 묻힌, 그리하여 고개만 간신히 내민 몸을 보아 서는 안된다고 네가 말했다. 슬픔에 겨워 눈물 흘리는 것 보다 아픔을 끌어당겨 명주실 잣듯 몸 풀려나오는 미소 가 더 못 견디는 일이라고 네가 말했다. 연꽃 나호열 연꽃 속에도 길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네 누군가를 처음 .. 2010. 7. 17. 아프리카의 눈 / 나호열 아프리카의 눈 / 나호열 아프리카의 눈은 검다 끝을 모르게 깊어져야 닿게 되는 곳킬리만자로는 높이 솟아 있는 것이 아니라깊게 가라앉아 있는 것 만년설 흰 자위 속에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 온통 옥빛 하늘을 담고 있다 아프리카의 눈은 검다 지상으로 내려올수록 몸은 격렬하게 북소리를 낸다 단순.. 2010. 7. 14.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 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