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열 시인/詩441 사랑해요 p r a h a 사랑해요 나호열 당신이 듣고 싶은 말 내가 하고 싶은 말 그러나 그 말은 너무 멀리 있네 단 하나의 침으로 허공을 겨누고 밤하늘 별들이 파랗게 돋아났으나 꿀벌은 지상으로 떨어져 내려 이제는 슬픔도 늙어 가슴을 잃었네 우두커니 한 사람 정류장에 서 있으나 버스는 오지 않는다 걸어라 빙.. 2009. 3. 17. 절벽을 우러르며 절벽을 우러르며 / 나호열 집을 나설 때나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송곳니 같은 인수봉 절벽이다. 다섯 살 되던 해 시내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살기 바랬던 아버지는 정능으로 집을 옮겼고, 그 후로 나는 줄곧 삼각산 연봉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삼각산 연봉의 끝에 도봉.. 2009. 3. 17. 풍경 속으로 풍경 속으로 / 나호열 사거리 껌벅이는 우리은행의 현금인출기에는 우리가 없다 사거리 건너편 국민은행에는 국민이 없다 며칠 째 참 만두 빚어 파는 푸른 트럭의 아줌마 보이지 않고 몇 년 째 신용불량자 장씨 즉석 짜장 봉고는 불법 주차 중이다 늘 막차를 타고 한강을 건너가는 구두 수선 아저씨는 .. 2009. 3. 14. 흐린 날 흐린 날 / 나호열 아침엔 눈 뿌리고 오후에는 비가 내렸다 이 모든 것이 햇살의 조화 아니면 바람의 장난이다 잎 떨군 우듬지 하나가 어깨를 칠 때 나는 창 안에서 그의 손을 잡고 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차를 놓치고 내젓는 웃음으로 길고 어두운 길을 걸어왔다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과 상처는 멀.. 2009. 3. 14. 사랑은 앓는 것이다 사랑은 앓는 것이다 / 나호열 발밑에 밟히는 나뭇잎들의, 착각이기를 바라지만 목의,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운명의 시간을 맞이한 저 무표정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떤 억압에도 웃거나 우는 법 없이 겨울의 사전 속에 막막하게 들어와 박히는 자음들, 아직도 뇌리에서 절름거리는 발자국처럼 넘.. 2009. 3. 14. 낡은 집 낡은 집 / 나호열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이 없이 그 집은 훌쩍 떠났다 미처 따라가지 못한 사연을 누가 알 것인가 화분 속 활엽수 한 그루 며칠 째 서성거리며 찬 바람을 맞고 있다 흘낏 흘낏 담배 피우며 말없이 그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본다 비좁은 화분 속에서 손은 새파랗게 얼었고 물관에는 온통 바.. 2009. 3. 14. 선물 선물 / 나호열 빈 노트를 선물하고 싶어요 아무 것도 쓰여지지 않은 노트를 내가 날마다 바라보는 나무의 나뭇잎 만큼의 갈피가 담긴 빈 노트를 드리고 싶어요 날씨라든가 그 날의 기분이라든가 아니면 그 무엇이라도 좋아요 그 빈 노트를 돌려받을 수는 없어요 이미 무엇인가로 채워져 갈 빈 노트는 .. 2009. 3. 14. 너, 나 맞아? p r a h a 너, 나 맞아? / 나호열 시인이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저 개울가 깊이 박힌 바위를 들어올려 마음 속에 모래로 담아두었다가 다시 그 모래 속으로 마음을 집어넣는 사람이라고 내가 말했다 2009. 3. 11. 얼굴 / 나호열 얼굴 / 나호열 -봉감 모전 오층 석탑 아무도 호명하지 않았다. 까마득하게 오래 전부터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를 맑은 물가에 나아가 홀로 얼굴을 비춰보거나, 발목을 담궈보다가 그 길 마저 부끄러워 얼른 바람에 지워버리는 나는 기댈 곳이 없다. 그림자를 길게 뻗어 강 건너 숲의 가슴에.. 2009. 3. 5. 한아름 한아름 / 나호열 왼 손과 오른 손이 닿으면 보이지 않는 원이 하나 생깁니다 찬 밥 한 덩이 얻어들고 두 손 안에 감쌌던 밥그릇 그만큼 자라고 또 자라 이 세상에 쿵쾅거리는 심장이 또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한번은 누구나 얼싸 안았던 그가 떠나고 떠나지 않고 기다려주는 나무의 체온을 느낄 때.. 2009. 3. 3. 이전 1 ··· 25 26 27 28 29 30 31 ··· 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