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 나호열
빈 노트를 선물하고 싶어요
아무 것도 쓰여지지 않은 노트를
내가 날마다 바라보는 나무의
나뭇잎 만큼의 갈피가 담긴
빈 노트를 드리고 싶어요
날씨라든가 그 날의 기분이라든가
아니면 그 무엇이라도 좋아요
그 빈 노트를 돌려받을 수는 없어요
이미 무엇인가로 채워져 갈
빈 노트는 영원히 빈 노트가 될 수 없으니까요
호수가 될지
숲이 될지
내가 걸어갈 수 없는 길이 될지
알 수 없는 일
나는 이미 투명히여 깨질 것 같은
당신의 숨결 속에
눈밭으로 내려앉은
빈 노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