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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詩441

느리게 / 나호열 p r a h a 느리게 / 나호열 우체국은 산 속 저물녘에 있다이 가을에 나는 남루한 한 통의 편지산길 초입 그리고 저물녘에서느릿느릿 우체국을 찾아간다블랙홀처럼 어둠은 황홀하다문득 아찔한 절벽 위에 몸을 가눌 때바위에 온 몸을 부딪치고 으깨어지면서 물은 맑고 깊어지는 흩날리는 꽃잎이다바람은.. 2009. 10. 29.
아다지오 칸타빌레 / 나호열 석장리 구석기유적지 / p r a h a 아다지오 칸타빌레 / 나호열 돌부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자주 넘어졌다너무 멀리 내다보고 걸으면 안돼그리고 너무 빨리 내달려서도 안돼나는 속으로 다짐을 하면서멀리 내다보지도 않으면서너무 빨리 달리지도 않았다어느 날 나의 발이 내려앉고나의 발이 평발임.. 2009. 10. 27.
느티나무 / 나호열 p r a h a 느티나무 / 나호열 다스리지 못한 마음을 생각한다 동구밖을 생각한다 가 보지 못한 길과 마을을 생각한다 그곳에 마을이, 사람이 모르는 마음이 있었다 천 년이 지나도록 자신의 쓰임새를 모르는 느티나무의 그늘이 한겹씩의 주름을 일으키는 파도가 되어 걸어온다 저만큼 느티나무는 베어질.. 2009. 10. 27.
나호열 / 천국에 관한 비망록 p r a h a 천국에 관한 비망록 / 나호열 - 42.195㎞ 천국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옥을 통과해야만 한다 비록 이 길이 지옥에서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이 길이 천국에서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태어난 곳으로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이 길이 죽음으로 완성되는 천국으로 가는 .. 2009. 10. 20.
나호열 / 이윽고 나는 고요해졌다 p r a h a 이윽고 나는 고요해졌다 / 나호열 이윽고 나는 고요해졌다 삼십 년쯤 불길이 미친 바람처럼 휩쓸고 간 후에 그리고 다시 삼십 년쯤 지루한 장마비가 불길을 덮고 지나간 후에 불의 살과 물의 영혼에서 빠져나온 뼈들은 완벽한 직립의 허무를 보여주었다 이제 시간은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 2009. 10. 20.
그림 퍼즐 / 나호열 p r a h a 그림 퍼즐 / 나호열 풍경은 서 있다 벽을 뚫고 고개를 넣어도 풍경은 고무줄처럼 늘어날 뿐 쓰러지지도 모로 기울지도 않는다 나무가 뿌리로 날갯짓하며 하늘을 날아가고 새들은 시한부 벽보의 웅크린 글씨로 응축되어 있다 출발선에 선 단거리 선수들의 가쁜 숨 등을 보이며 열 걸음 걸어가는.. 2009. 10. 19.
길 / 나호열 티벳 간덴사원에서 / p r a h a 길 / 나호열 먼 길을 돌아서 가는 중이다따뜻한 가슴에 닿기 위하여바늘 끝을 건너 뛰고 있는 중이다 2009. 10. 19.
닥터 지바고 / 나호열 p r a h a 닥터 지바고 / 나호열 광활한 대지와 무한한 하늘을 낮밤을 함께 주신다면 작은 오두막집을 짓겠습니다 낮이면 한발자국씩 길을 만들고 밤이면 돌아와 별들의 눈빛을 밝게 하겠습니다 길 하나의 끝은 그리운 사람의 오두막에 닿게 하고 별들의 심지가 다할 때까지 사랑하겠습니다 또 하나의 .. 2009. 10. 17.
미륵을 지나며 / 나호열 p r a h a 미륵을 지나며 / 나호열 거미줄같은 주름살 퍼지고 또 퍼져 이윽고 거울이 깨졌다희롱하듯 툭툭 건드리며 지나가는 바람에 잠 깨이는 희미한 웃음여기에 나를 두고 간 사람을 어찌잊겠느냐고 단단하게 고쳐먹은 마음도가끔씩 흔들리는 늙은 은행나무와 함께 물든 때도 있었거니때로는 울컥 .. 2009. 10. 11.
우체통은 멀리 있다 / 나호열 쿠트나호라 구시가지에서 / p r a h a 우체통은 멀리 있다 / 나호열 하느님의 역사처럼 아무도 모르게 문패를 달아놓는 일은 아름답다 부르지 않아도 구석진 자리 마다하지 않고 제자리 골라 명상에 잠긴 풀꽃들처럼 나의 집에 또 다른 이름을 달아놓는 일은 평화롭다 그도 나의 이름을 문 앞에 걸어놓았.. 2009. 1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