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열 시인/詩441 종점의 추억 p r a h a 종점의 추억 / 나호열 가끔은 종점을 막장으로 읽기도 하지만 나에게 종점은 밖으로 미는 문이었다. 자정 가까이 쿨럭거리며 기침 토하듯 취객을 내려 놓을 때 끝내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귀잠 들지 못하고 움추려 서서 질긴 어둠을 씹으며 새벽을 기다리는 버스는 늘 즐거운 꿈을 선사.. 2009. 12. 23. 그 길은 저 혼자 깊어간다 온달산성에서 / p r a h a 그 길은 저 혼자 깊어간다 / 나호열 직선으로 달리는 길이 뚫리고 길눈 어두운 사람만이 그 길을 간다 어깨가 좁고 급하게 꺾어들다가 숨차게 기어올라가야 하는 그 길은 추억같다 쉴 사람이 없어 폐쇄된 휴게소 입구의 나무 의자는 스스로 다리를 꺾고 무성하게 자라는 잡초들.. 2009. 12. 14. 당신에게 말걸기 / 나호열 당신에게 말 걸기 / 나호열 이 세상에 못난 꽃은 없다화난 꽃도 없다향기는 향기대로모양새는 모양새대로다, 이쁜 꽃허리 굽히고무릎도 꿇고흙 속에 마음을 묻는다, 이쁜 꽃그걸 모르는 것 같아서네게로 다가간다당신은 참, 예쁜 꽃 2009. 11. 20. 너는 슬프냐? / 나호열 p r a h a 너는 슬프냐? / 나호열 왜 그러냐고 어떻게 할거냐고 채근을 하는 사람들에게 오늘은 참으로 할 말이 없다 햇볕 맑은 날 이런 날은 쉬임없이 걷고 걸어 이 세상 끝에 빨래처럼 걸리고 싶다 걸레도, 깊은 곳 가려주던 속옷도 가지런히 한 줄에 매달리면 바람에 속절없이 흔들리는 깃발일 뿐이다, .. 2009. 11. 19. 도솔암 가는 길 p r a h a 도솔암 가는 길 / 나호열 뚜두둑 목 부러지는 동백도 아니 보고 그리운 상사화 아직도 피지 않아 발길 또 서운해지려 합니다 마음 눈 맑지 않으면 바위 속으로 무너져 버리는 마애불 찾지 못하여 못내 서운해지려합니다 동백도, 상사화도 마애불도 너의 마음속 비결처럼 숨어 있다고 그립고 사.. 2009. 11. 16. 가운데 토막 / 나호열 가운데 토막 / 나호열 걸어서 하늘까지 간 사람들이 있다. 시간의 火口를 지나기 위해서 신발을 벗고 더 이상 험로는 없다고 안경을 집어 던졌다. 생명을 축약한 푸른 연기 때문에 하늘이 더욱 깊어진다는 것이 그들의 거두절미 때문은 아니리라 오늘도 아우슈비츠를 지난다 머리를 잘리고 지팡이를 .. 2009. 11. 13. 난에게 난에게 / 나호열 사나흘 머무르려면 오지를 말지 얼마나 먼 곳으로부터 왔는지 어슴프레 새벽 향기 몇 편 손 닿을 수 없고 눈길에도 녹아내릴 듯 하니 천 길 우물 속에 빠진 작은 별 처럼 차고 흰 가슴에 묻힐 것이냐 어느 눈 온 날 홀로 떠난 발자국처럼 사나흘 머무르려면 오지를 말지 사진 / 시인 나.. 2009. 11. 12. 불의 산 / 나호열 불의 산 / 나호열 - 민둥산 억새 긴 문장 하나가 산을 오른다 꼬리에 꼬리를 문 맹목의 날들처럼 검은 상복의 일개미들의 행렬처럼 발자국들 눌리고 덮히며 수직으로 서려는 탑인 듯 길은 꿈틀거린다 고독한 여행자 같은 가을이 느릿느릿 산의 몸을 더듬을 때마다 식은 땀을 흘리는 숲을 지나서 이윽고.. 2009. 11. 10. 담쟁이 덩굴은 무엇을 향하는가 p r a h a 담쟁이 덩굴은 무엇을 향하는가 / 나호열 혼자 서지 못함을 알았을 때 그것은 치욕이었다 망원경으로 멀리 희망의 절벽을 내려가기엔 나의 몸은 너무 가늘고 지쳐 있었다 건너가야 할 하루는 건널 수 없는 강보다 더 넓었고 살아야 한다 손에 잡히는 것 아무 것이나 잡았다 그래, 지금 이 높다.. 2009. 11. 4. 그대 사는 곳 p r a h a 그대 사는 곳 / 나호열 그대 사는 높은 곳 구름을 본다 티베트의 산정 사원에 마릴린 몬로의 웃음 들리는 듯 아이스크림이 녹는다 폐허라도 저렇게 무너질 수 있다면 터무니없는 탑을 쌓고 또 쌓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하염없이 하늘을 터벅터벅 걸어서 올라간다 그대는 천국에 산다 새 우짖.. 2009. 10. 30. 이전 1 ··· 17 18 19 20 21 22 23 ··· 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