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4230 슬픈 꿈 / 안영희 슬픈 꿈 안영희 고즈넉이 어두워지는 겨울의 창을 바라보면 생각난다 萬鍾驛 근처 허름한 밥집 저 혼자 끓고 있는 찌게 냄비와 그 탁자 사이 두고 문득 사내가 하던 말 100일만 주어진다면, 우리가 딱 그만큼만 살고 갈 시한부라면 널 데리고 아프리카로 가겠어 거길 가면 아직도 원시로 살고 있는 그런.. 2006. 3. 6. 개기 일식 / 박남희 개기 일식 박남희 산그늘에 들고 나서야 겹쳐질 때 내 몸이 어두워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산그늘에 핀 꽃을 보고나서야 겹쳐진 빛이 내 몸에 온전히 스며들어 어둠과 한 몸이 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산그늘에서 벗어난 후에야 빛과 어둠의 어쩔 수 없는 친화력을 우주의 엄청난 장력으로.. 2006. 3. 6. 타클라마칸‧1 / 나호열 타클라마칸‧1 / 나호열 사람아 부르면 별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곳 사람아 다시 부르면 바람만 무너져 내리는 곳 오, 짐승들의 무덤 유폐의 땅 아무도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바람의 집이여 신기루를 좇으며 사라지는 사람들 가슴에 뚫린 머나먼 실크로드여 ♥ 2006. 3. 5. 바람의 흔적, 존재를 찾아서 / 나호열 "바람의 흔적, 존재를 찾아서" -폐사지에서- 중에서 나호열 ................................... 낯 선 곳으로의 이동은 경이롭다. 상상할 수 조차 없는, 그러므로 어떤 묘사로도 담아낼 수 없는 그 어떤 곳이 존재한다는 것, 그곳에서도 뭇 생명과 마을과 사랑과 미움이 바람의 흔적처럼 남아 있다는 것이 눈물겨.. 2006. 3. 5. 비누 / 나호열 비누 나호열 거품이 인다 적당한 향기와 백색의 거품 속에서 천천히 나는 마모되어 간다 사랑하겠노라고 온 몸으로 천 만번 약속해도 지켜지지 않는 사는 일 망각은 거품처럼 거품은 망각처럼 때를 지운다 늘 물의 이치를 생각하면서도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시간 앞에서 나는 무엇을 위한 속죄양인가 .. 2006. 3. 5.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체리향기' 등의 감독으로 잘 알려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진전이 이달 26일부터 다음달 15일까지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열린다. 키아로스타미는 우리나라에 이란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시인이자 사진작가로도 활.. 2006. 3. 5. 이윽고 나는 고요해졌다 이윽고 나는 고요해졌다 / 나호열 이윽고 나는 고요해졌다 삼십 년쯤 불길이 미친 바람처럼 휩쓸고 간 후에 그리고 다시 삼십 년쯤 지루한 장마비가 불길을 덮고 지나간 후에 불의 살과 물의 영혼에서 빠져나온 뼈들은 완벽한 직립의 허무를 보여주었다 이제 시간은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폐가의 .. 2006. 3. 4. 춤 / 나호열 춤 / 나호열 절은 사라지고 홀로 남은 강가의 탑처럼 조금씩 허물어지는 육신의 틈이라고 나는 배웠다 직립을 꿈꾸면서도 햇살에 휘이고 바람에 길들여지는 나무들의 허공을 부여잡은 한 순간 정지의 날숨이 춤의 꿈이라고 나는 배웠다 그러나 또한 동천 언 하늘에 길을 내는 새들의 날갯짓과 제 할 .. 2006. 2. 21. 흔들리는 것들 / 나희덕 흔들리는 것들 나희덕 저 가볍게 나는 하루살이에게도 삶의 무게는 있어 마른 쑥풀 향기 속으로 툭 튀어오르는 메뚜기에게도 삶의 속도는 있어 코스모스 한 송이가 허리를 휘이청 하며 온몸으로 그 무게와 속도를 받아낸다. 어느 해 가을인들 온통 들리는 것 천지 아니었으랴 바람에 불려가는 저 잎새.. 2006. 2. 21. 기억의 자리 / 나희덕 기억의 자리 나희덕 어렵게 멀어져간 것들이 다시 돌아올까봐 나는 등을 돌리고 걷는다. 추억의 속도보다는 빨리 걸어야 한다. 이제 보여줄 수 있는 건 뒷모습뿐, 눈부신 것도 등에 쏟아지는 햇살뿐일 것이니 도망치는 동안에만 아름다울 수 있는 길의 어귀마다 여름꽃들이 피어난다, 키를 달리하여 .. 2006. 2. 21. 다음 생의 나를 보듯이 / 나희덕 다음 생의 나를 보듯이 나희덕 어느 부끄러운 영혼이 절간 옆 톱밥더미를 쪼고 있다. 마치 다음 생의 나를 보듯이 정답다. 왜 하필이면 까마귀냐고 묻지는 않기로 한다. 새도 짐승도 될 수 없어 퍼드득 낮은 날개의 길을 내며 종종걸음 치는 한 生의 지나감이여 톱밥가루는 생목의 슬픔으로 젖어 있고 .. 2006. 2. 21. 소리에 기대어 / 나희덕 소리에 기대어 나희덕 가로수 그늘에 몸을 기대고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별 몇개가 떨어졌는지 잡풀 뒤에 숨어서 누가 울고 있다. 쓰르라민가, 풀무친가, 아니면 별빛인가 누구인들 어떠랴 머리를 가득 채우는 저 소리, 충만을 이내 견디지 못하는 나는 다시 하늘을 본다. 눈 멀어지니 귀도 멀어.. 2006. 2. 21. 이전 1 ··· 344 345 346 347 348 349 350 ··· 35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