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흔적, 존재를 찾아서"
-폐사지에서- 중에서
나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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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 선 곳으로의 이동은 경이롭다.
상상할 수 조차 없는, 그러므로 어떤 묘사로도 담아낼 수 없는
그 어떤 곳이 존재한다는 것,
그곳에서도 뭇 생명과 마을과 사랑과 미움이 바람의 흔적처럼 남아 있다는 것이 눈물겨웁다.
잠깐 잠깐 스쳐 지나가는 표지판의 마을 이름,
숫자화된 도로명이 그 되돌아가야 할 곳을 알리는 따스한 손길이고 눈짓이 될 때,
바람은 비로소 자신이 지니고 있는 소멸의 실체를 부스러기처럼 흔적으로 남긴다.
우리의 삶은 무엇으로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어느 사람은 바람을 잡아두고 싶어하고, 어느 사람은 바람을 그리고 싶어한다.
그러니 우선은 바람 앞에 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연의 마주침, 분기와 생성, 이동, 사라짐 또는 소멸...
끊임없이 다가서는 관념은 바람에 찢겨지고, 펄럭이며,
흔들리는 자신을 느끼게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세상이 바람으로 가득하다.
정지한 바람, 뛰어가는 바람,
저 집도, 저 산도, 나무도, 구름도,
모든 것이 다 바람이다.
바람을 거역하는 본능과 본능을 제압하려는
자아의 분투 속에서 사랑은 사생아처럼 태어난다.
바람의 흔적은 폐허로 남을 때 가장 아름답다.
폐허는 사랑으로 온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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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소크라테스가 말했던가?
"나는 나를 고발한 자나 사형을 언도한 배심원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미움을 가지지 않은 것만큼이나 사랑을 가져 본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소크라테스의 고백이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고개를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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