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내면 들여다보기 또는 철학성을 위해 시를 쓰는 시인 나호열
시인 나호열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986년 데뷔한 이래 그는 꾸준한 작품활동을 전개해 온 중견시인 임에도 시단에서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이 시인을 주목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그는 스스로 은둔자임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세속적 영예에 눈을 돌리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오로지 시를 쓰고 시를 씀으로서 자신을 연마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는 선비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그는 7권의 시집을 상재하여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 왔으면서도 자신과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판에 귀 기울여 본 적 없다. 그는 문단 내에서 동인이나 사교적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는 그 시간에 사유의 영토를 넓히고 그 안에 거주하기를 희망하는 듯 보인다.
2001년 9월초에 상재한 시집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는 서정적이면서 그 자신이 살아온 세월과 사랑에 대한 성찰이 가득하다. 그는 삶의 근원으로서 사랑을 탐색하고 그 사랑을 자신의 삶을 견인하는 動因으로 탐색한다.
우리는 그의 시집을 통하여 현대인의 고독한 내면 풍경을 바라다본다. 그 풍경은 결코 난삽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그 풍경 속에 길을 하나 만들고 싶다는 충동을 버릴 수가 없다. 그 길을 통해서 시인이 은둔에서 도회를 소요하는 거리의 사색가로 되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1953년 충청남도 서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우울하고 창백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서울의 경동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치고 건국대학교 철학과를 다녔다.
1973년 교내 신문에 시와 산문을 발표하면서 문학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 때 작 고한 정창범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1974년 양경덕(시인). 이철민 (KBS PD)과 함께 3인 시집< 活>을 발간하였다.
1975년 육군에 자원 입대하여 3 년동안 최전방에서 군생활을 하였다. 이 기간 동안 역사와 분단 조국에 대한 비원을 느끼게 되었다
1980년 시인인 정은희와 결혼하면서 문학인으로서 평생을 걸어갈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박상훈(시인), 조일영(시인), 양경덕(시인), 오만환(시인), 김상우(시인), 오창제(시인) 과 함께 울림시 동인을 결성하였다.
이후 울림시 동인은 <우리 함께 사는 사람들> 1집 (영학 출판사), <우리함께 사는 사람들>2 집( 정신세계사), <우리 함께 사는 사람들>3집 (예진 출판사)를 간행하였 다.
1985년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여 이후 박사과정을 마치었다
1986년 월간 문학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 때 심사위원은 성춘복 ,황 명 시인이었고, 이후 3, 4년 동안 미래시 동인으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전개하였다.
1989년 첫 시집 <담쟁이 넝쿨은 무엇을 향하는가>를 청맥 출판사에서 간행하였다. 이재호, 최준 시인과 함께 <집에 관한 명상 또는 길찾기>를 소담출판사에서 펴냈다.
1990년시집<망각은 하얗다>를 예진출판사에서 간행하였고, 이시집은 문예진흥 원 창작 지원금을 받았다.
세 번째 시집 <아무도 부르지 않는 노래>를 펴냈으며, 이 시집은 사진 시집으로 편 집 되었다. 이 시집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들은 이후 출간된 시집에 수록 되었다.
1991년 계간 <시와 시학>에서 중견 시인상을 받았다. 김재홍 평론가(경희대 국문과 교수)를 만나게 되면서 새로운 문학의 열정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1993년 시집<칼과 집>을 시와 시학사에서 간행하였다. 이후 4, 5년 동안 개인적으로 매우 혼란한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창작활동을 하지 않은 채 대학원에서 철학을 수학하 였다
1996년 경희대학교 사회교육원이 개원되어 연구원으로 재직하였으며 현재까지 <시창작교실 >를 지도하고 있으며. 문학과 철학, 동양사상에 관련된 강의를 하고 잇다.
1999년 오랜 침묵을 깨고 시집 <우리는 서로에게 슬픔의 나무이다>를 시와 시학사에서 간 행하였다. 문학 사이트 <문학의 즐거움>에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다수의 시와 수필, 기행문 등을 발표하였다.
격월간지 <시현실>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하였고, 경희대학교 사회교육원 홈페이지에
시 입문자들을 위한 무료 사이버 강좌를 개설하여 호응을 얻었다. 현재까지 12 과의 시창작 강의노트 및 자료가 수록되었다.
2000년 문학웹진 <포엠토피아>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였고, 인터넷문학신문의 부주간을 거 쳐 현재까지 주간으로 재임 중이다
문화예술진흥원의 문인정보화 사업 지원자로 선정되었다.
2001년 시집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를 포엠토피아에서 간행하였다. 이 시집은 문화예술진흥원의 출판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문학 동인회 <강남시 문학회>회 원으로 활동 중이다.
경기도 동두천시 문화원의 문학 지도를 하였으며, 한국생산성 본부 등에서 인성에 관련된 특강을 계속하고 있다.
나호열의 작품세계
김재홍(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저녁에 닿기 위하여 새벽에 길을 떠난다"라는 참신한 직관의 1행시 <집과 무덤>의 시인 나호열,그는 1991년 <시와시학>지를 통해 새롭게 데뷔한 이래 존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바탕으로 사람사는 일에 대한 탐구를 깊이있게 전개해 가고 있는 역량있는 신진시인의 한사람이다.
특히 그는 1993년 봄 <상계동> 연작을 집중 수록한 시집 <칼과 집>을 통해서 갇힌 삶,사막화한 오늘의 삶의 형태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과 자기성찰을 펼쳐 보인바 있다.
거대한 감옥이었다
마음 속에 집을 다스리며 사는 사람과
마음 밖 먼 곳에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
아무도 열쇠가 어디에 있는 줄 모른다
갇혀서 오늘을 산다
- 水落山下 - 상계동. 27
그렇다! '오늘날 여기'에서의 삶이란 하나의 거대한 감옥에 갇혀사는 수형생활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삶에 순응하는 사람이나 부정하는 사람들, 어디론가 떠나려고 갈등하며 방황하는 사람들까지도 그 모두에게 있어 '오늘, 여기'서의 삶이란 고통스런 사막의 삶이 아닐 수 없다."아무도 열쇠가 어디에 있는 줄모르고// 갇혀서 오늘을 사는" 막막한 모습인 것이다. 그러기에 집은 바로 하나의 무덤일 수 있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차디찬 벽만이 가로놓여져 있을 뿐이다.그러기에 시인은 "나는 어디에든/따뜻한 알을 낳고 싶다(동상이몽- 상계동. 1)라고 갈망하게 된다.그러나 그렇지 못한 현실의 벽에 부딪쳐 "함부로 촛불도 꺼트리고/쉽게 마음을 조각내는/아무도 손내밀지 않는 /칼이 될(칼과 집)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서로 너나 할 것 없이 칼이 되어 부딪치면서 칼의 삶, 광물질적인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나호열 시집 <칼과 집>의 의미가 선명히 드러난다.광물성의 시대를 기계인간이 되어 살아가면서 불신과 단절의 벽을 더욱 높이 쌓아가는 사대에 생명회복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고 있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집이란 존재의 주거이면서 죽음의 한 표상이고 동시에 부활의 집이자 창조의 터전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칼과 집'이란 바로 현대적 실존의 소외와 위기극복 의지를 영원한 집에 대한 갈구로써 형상화한 것이다.집은 모든 존재의 원초적 삶이 시작되는 근원이며,세상으로 열려 떠나온 것이고 동시에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장소에 해당한다. 현실에서의 집에서 살다가 모든 존재는 영원의 집으로서 무덤으로 돌아가게끔 운명지워진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나호열의 시들은 현대적 실존의 모습을 칼과 집, 또는 감옥과 무덤으로 예리하게 상징화함으로써 이 근래 많은 신진시인들과는 달리 깊이있게 철학성을 탐색하는 진지성을 보여준데서 주목에 값한다. 신예평론가 박윤우의 지적대로 나호열의 시에서 삶이란 존재의 집을 찾기 위한 끝없는 방랑의 길이며 그 목적지에 무덤이 가로 놓여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집 <칼과 집> 해설- 사회적 존재의 탐색과 휴머니즘의 길)
바로 여기에 필자가 나호열의 시를 주목하는 까닭이 놓여진다. 요즈음 많은 신진시인들은 삶의 본질에 깊이있게 육박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이 요설이나 신기한 이미지 또는 실험에 집착하는 경우가 적지않게 발견된다. 이른바 소문난 신인일수록 머리로 쓰는 시 또는 손끝으로 쓰는데 몰두하여 쓰기 위한 시를 쓰는 모습이 산견되기 때문이다.말하자면 최근 많은 신진시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깊이있는 철학성의 빈곤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물었다
나무에게,구름이며 꽃에게
흐르는 길이며 강물에게
그들은 말하지 않고
조용히 몸짓으로 보여주었다
일인극의 무대
굴뚝이 연기를 높이 피워올렸다
절해고도 표류자의 독백처럼
표정이 없는 희망이 되는
사전에 없는 어휘가 되는
물음들
아직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
나는 본다
나무의,구름의,꽃의,흐르는 길과 강물의
커져가는 귀를 본다
귀는 물음표를 닮았다
- 아무도 부르지 않는 노래. 91
근작시에서 시인은 그간의 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존재의 근원에 대한 형이상학적 탐구를 더욱 심화해가고 있어서 관심을 환기한다. 실존적 삶의 표정성 또는 존재론적 징후읽기에서 나아가 삶의 본질 또는 사물의 본성에 대한 진지한 들여다보기 작업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다만 몸짓 자체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나무며 구름,꽃이며 길과 강들은 모두다 고유한 존재양식과 독자적인 법칙성을 지닌다. 개별자들이 지닌 존재의 독자성을 존재론적 환원을 통해서 사물의 본질로 육박해 들어가려는 시인의 내면적인 고심이 '커져가는 귀' 또는 '귀는 물음표를 닮았다'라는 질문제기로 형상화되어 있는 것이다.
아울러 <아무도 부르지 않느 노래. 97>에서는 사물의 본성이 어둠과 밝음,생성과 소멸이라는 양면성,모순성으로 파악될 수 있음을 통해서 삶의 본질을 비춰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쁜 화음'의 세계를 갈망하여 존재론적 초극을 지향하기도 한다.
아울러 아러한 실존의 본성탐색을 보다 내면적인 구도행위와 연결시켜서 인간이란,아니 삶이란 무엇인가라는데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무거운 짐을 가득 지고
나귀는 앞질러 걸어갔다
뒤쳐져 따르는
일기장이나 편지 같은 것
녹슨 추억의 꾸러미는
쓸데없이 무겁다
지친 물음으로 나귀가 나를 부른다
너는 어디에 있느냐
- 왕오천축국전.
한마디로 말해 인간이란 진정한 자아를 찾아 헤매는 고달픈 순례자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는 인식이 새롭게 시작되는 연작 왕오천축국전의 내용으로 짐작된다. 녹슨 추억의 꾸러미를 지닌 채 무거운 짐을 지고 헐떡이며 사막을 가고 있는 낙타의 모습, 그것이 바로 인간의 근원적인 모습에 해당한다.어디서 와서,어디를 향해,어디를 지금 가고 있는가 묻고 있는 낙타의 모습이란 바로 존재의근원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 인간의 또다른 형상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실상 "너는 어디에 있느냐"라는 질문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잃고 헤매는 현대인의 모습에 대한 인식과 함께 그를 찾아 나서는 것이 삶의 진정한 의미이고 바로 시를 보는 일이라는 또다른 인식이 함께 반영되어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삶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전개하면서도 그의 시는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실존에 대한 탐색을 게을리하지 않는데서 시적 건강성과 탄력성이 드러난다.
하루에두세번씩
맹수의으르렁거림으로
거울앞에선다
바보스럽기는하지만
엄숙하게치솔을물고하얗게
하얗게번져나오는탐욕의거품을내뱉는다
초식과육식의갈림길(희망과절망의그사이)
송곳니와어금니의표정들을하나로묶으면서
내가살기위하여죽여야하는
불특정다수를향해
무기마냥소중하게이빨을닦으면서
- 판토마임 -
이 시는 이빨을 닦는 행위를 통해서 운명과 도전,육식과 초식,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짐승처럼 으르렁대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대적 삶의 실존성을 예리하게 풍자하고 있다. 오늘의 삶에 대한 날카로운 회의와 반성을 아이러니컬하게 묘파하면서 사람다운 삶이란 과연 어떻게 사는 일일까를 고뇌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나호열의 시가 지닌 미덕 또는 건강성이 예리하게 부각된다. 그것은 오늘의 실존적 삶에 끊임없이 고뇌하면서 본질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본성은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일이 오늘에 있어 진정한 자아를 실현하는 길인가에 대한 진지한 모색과 성찰을 끊임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다시말해 그의 시에는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실존의 몸부림과 함께 존재의 본질 또는 자아의 진정한 발견과 실현을 향한 구도적인 안간힘이 제시됨으로써 이즈음 많은 신진시들이 처한 철학상실의 위기를 돌파해 나아가려는 진지한 노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드러난다.
현실의 깊디깊은 갱도 그 어둠 속에 갇혀 묵묵히 인간적 진실의 알갱이를 캐내는 고독한 시의 탄부로서 나호열의 시적 정진은 그 누가 알아주고 않고 간에, 세간의 명성과는 전혀 관계없이 참으로 의미있고 가치있는 작업임에 분명하다. 현실의식과 삼투되는 철학성의 획득,사회의식과 길항하는 형이상적 구도의 진지성과 따뜻한 진실미 그 자체만으로도 그의 시는 이미 빛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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