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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김경성 - 근작시115

허공을 베어 문 그의 입이 둥그렀다 / 김경성 허공을 베어 문 그의 입이 둥그렀다 김경성 느릅나무의 내부를 들여다본다 톱날이 몇 번 지나가자 새집이 바닥에 떨어지며 새들의 가계가 허물어져버린다 새를 품었던 나무는 이제 없다 순식간에 집을 잃은 새들이 날아가지 않고 나무가 있던 허공을 맴돈다 새들의 맨발이 검붉다 톱밥.. 2019. 4. 9.
파파야 나무 꽃이 말하다 / 김경성 파파야 나무 꽃이 말하다 김경성 어느 먼 곳에서 오래 걸어왔는지 발뒤꿈치에 선명한 길이 나있다 바람에 날리는 노을빛 가사가 길 눈을 밝히며 바다로 난 길로 들어서고 스님들의 모습이잘 익은 파파야 속만 같아서 옆에 앉아 이국의 말을 듣는다 그 말에는 빛이 있어서 수줍은 듯 피어.. 2019. 4. 9.
음계를 짚어가는 손가락이 낯설다 / 김경성 음계를 짚어가는 손가락이 낯설다 김경성 오래전에 다 익혔던 낡은 악보처럼 둥그렇게 휜 목덜미가 아니어도 방파제에서 홀로 연주한다는 것만으로 누군가에는 충분히 위안이 되는 시간 예감인 듯 바람이 불고 마른번개가 일며 아코디언을 수없이 폈다가 접으며 바람을 읽는 바다 그 젖.. 2019. 3. 13.
시, 샹블랑 : 사진과 시와 단평 / 김경성 시산맥 2018년 겨울호 시, 샹블랑 사진과 詩와 단평 / 김경성 뒷모습 1 뒷모습 김경성 욕실 벽을 오르내리는 도마뱀의 행방을 쫓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샤워기 옆에서 물길을 읽고 어떤 날에는 구석에 엎드려서 곰곰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마음의 부리가 예민해진 날에는 쏜살같이 어딘가.. 2019. 1. 16.
먼 바다는 멀리 있지 않다 / 김경성 먼 바다는 멀리 있지 않다/김경성 푸르메리아꽃 떨어진 자리는 향기롭고 오후 여섯 시 무렵 먼 바다로 나가는 바닷물은 쓸쓸하다 바다의 지문을 읽다가 돌아온 눈이 맑은 목선은 붉은 깃발을 흔들며 출렁거리고 그물을 빠져나온 작은 물고기가 바짝 마른 뱃가죽으로 백사장을 끌어내고 있다 비늘을 다 떼어내고 마음의 빗장을 풀어서 멀리 던져버렸지만 가슴 한구석을 쓰리게 할퀴고 가는 가시는 어디에서 온 것인지 바다가 하늘이고 하늘이 바다가 되는 해지고 난 후 짧은 암청빛의 시간 내가 말하지 못하고 가슴에 품고 있는 말들이 이런 빛일까 손 끝에서부터 차오르는 뭉클한 … 푸르메리아꽃을 머리에 꽂고 목선의 닻을 올린다 먼 바다는 멀리 있지 않다 -계간 2018년 가을호 2018. 7. 19.
선운사 가는 길 외 2편 - 나에게서 가장 먼 길 / 김경성 김경성 시 3편, 시인수첩 김경성 시 3편.hwp 시인수첩.hwp 사강에서 길을 찾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 한결같이 날개를 활짝 편 새 한 마리씩 데리고 간다 저 새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어떤 새는 나무 숲으로 들어가고 어떤 새는 골목길에 있는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간다 날지 못하는 새는 눈물 흘리며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데 자꾸만 날개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아무도 귀를 기울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사소한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젖어 있을 때만 날개를 펼 수 있는 새의 운명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날개 접은 새를 안고 버스 뒷자리에 앉았다 버스 문이 여닫혀도 놀라지도 않고 부리로 무언가를 쓴다 모스 부호 같은 말들을 읽느라 내릴 곳을 놓쳐버린 나는 우음도로 가는 사강 어디쯤에서 지.. 2018. 2. 1.
흰 탑이 있는 바다 / 김경성 흰 탑이 있는 바다 김경성 바다가 보이는 절 마당에 석탑이 서 있다 언제부터인가 흰 새들이 날아와서 바다에 탑을 쌓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길어졌다가 짧아지는 석탑보다 더 높아졌다 어떤 날에는 절집의 석탑이 그림자를 다 거둬들이기도 전에 옥개석의 흰 처마를 펼쳐서 제 몸을 늘리.. 2018. 1. 9.
흑백사진을 찍었다 / 김경성 흑백사진을 찍었다 둥근 귓바퀴를 감싸도는 바람이 등나무를 흔들었다 입술을 오므리니 탄식 같은 휘파람 소리가 흘러나왔다 두 손을 맞잡으니 동그라미가 생겼다 모퉁이에 몸을 맞추고 그림자를 굴리며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얼마나 오랜 시간 길 밖의 사람들이 길 안쪽으로 들어왔는.. 2018. 1. 9.
지극히 편파적인 월평 / 이대흠 지극히 편파적인 월평 / 이대흠 김경성의 「망고나무와 검은 돌」은 환상적인 면이 있다. 시작을 “나뭇잎이 빙그르르 맴돈다”고 하였다. 망고나무 그릇에서 그런 연상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잘 이해하기는 어렵다. “씨앗에 날개를 달아서 가벼운 망고나무 그릇”이라는 말도 어렵.. 2017. 10. 15.
상처에 관한 변주곡 / 김경성 상처에 관한 변주곡 김경성 물속에 발목을 담고 사는 새들의 전생은 물이었다 뼛속을 비우고 하늘로 뛰어드는 것은 제 몸에서 출렁거리는 깃털을 가다듬기 위한 것 퍼득거리는 물고기를 물고 솟아오르는 물총새가 물비린내를 연신 바람으로 닦으며 저쪽으로 날아갔다 물속에 사는 것들.. 2017.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