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탑이 있는 바다
김경성
바다가 보이는 절 마당에 석탑이 서 있다
언제부터인가 흰 새들이 날아와서 바다에 탑을 쌓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길어졌다가 짧아지는 석탑보다 더 높아졌다
어떤 날에는 절집의 석탑이 그림자를 다 거둬들이기도 전에
옥개석의 흰 처마를 펼쳐서 제 몸을 늘리기도 했다
어느 간절한 기도가 닿았는지
억새꽃이 일렁이자 거짓말처럼 날아올랐다가 다시 바다로 되돌아왔다
흰 탑의 가늘고 긴 다리에 걸린 바다
그 누구의 마음이 저리도 넓고 깊을까
그 자리에 오래 서 있는 것만이 다는 아니라고
무너졌다가도 다시 일어서는 흰 탑을 바라보며
나는 아프고 슬펐던 날들을 불러 보았다
- 《미네르바》2017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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