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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김경성 - 근작시

흰 탑이 있는 바다 / 김경성

by 丹野 2018. 1. 9.



흰 탑이 있는 바다

김경성 

 

바다가 보이는 절 마당에 석탑이 서 있다

 

언제부터인가 흰 새들이 날아와서 바다에 탑을 쌓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길어졌다가 짧아지는 석탑보다  높아졌다

 

어떤 날에는 절집의 석탑이 그림자를 다 거둬들이기도 전에

옥개석의 흰 처마를 펼쳐서 제 몸을 늘리기도 했다

 

어느 간절한 기도가 닿았는지

억새꽃이 일렁이자 거짓말처럼 날아올랐다가 다시 바다로 되돌아왔다

흰 탑의 가늘고 긴 다리에 걸린 바다

그 누구의 마음이 저리도 넓고 깊을까

 

그 자리에 오래 서 있는 것만이 다는 아니라고

무너졌다가도 다시 일어서는 흰 탑을 바라보며

나는 아프고 슬펐던 날들을 불러 보았다

 

     - 《미네르바》2017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