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계를 짚어가는 손가락이 낯설다
김경성
오래전에 다 익혔던 낡은 악보처럼 둥그렇게 휜 목덜미가 아니어도
방파제에서 홀로 연주한다는 것만으로
누군가에는 충분히 위안이 되는 시간
예감인 듯 바람이 불고 마른번개가 일며
아코디언을 수없이 폈다가 접으며 바람을 읽는 바다
그 젖은 마음이 멀리 퍼져 방파제를 넘어섰다
건기가 발을 빼고 우기의 이마가 보이는 계절
방파제에 앉아있는 수많은 사람의 눈에도 바닷물이 차오르고
바다를 들인 기타로 연주를 하는 젊은 여행자의 낯선 손가락이
어느 순간 따스했던 기억을 불러낸다
저만치 홀로 앉아있는 한 사람,
어떤 슬픔을 지고 있는지 오른쪽 어깨가 내려앉아 있다
잃어버린 것이 무엇일까
처연한 상실도 때로는 뿌리가 돋느라 짙은 향기를 낼 적이 있다고
낯선 손이 빚어내는 소리를 들이며
기울어졌던 몸이 점점 펴지고 있다
모르는 사람들이 모두 아는 사람이 되어서
음계를 짚어가는 낯선 사람의 마음 안으로 다 들어갔다
저녁 하늘이 바다보다 더 짙푸르다
- 계간 『불교문예』 2018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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