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야 나무 꽃이 말하다
김경성
어느 먼 곳에서 오래 걸어왔는지 발뒤꿈치에 선명한 길이 나있다
바람에 날리는 노을빛 가사가
길 눈을 밝히며
바다로 난 길로 들어서고
스님들의 모습이잘 익은 파파야 속만 같아서
옆에 앉아 이국의 말을 듣는다
그 말에는 빛이 있어서
수줍은 듯 피어나는 파파야 나무 연노랑 꽃들,
어느 순간 꽃이 아닌 듯 푸른 파파야가 보이고
차마 그 속을 깊이 볼 수 없어 먼 곳에 눈을 둔다
스님의 가사자락 스친 노을이 점점 진해지고
내 마음 빛도 풀어져서 같이 번지는
꽃이 이제 막 피어나는데
마음으로 빚어내는 나무에는 파파야 열매가 가득하다
세상의 길들이 모두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다고
잘 익은 파파야 속에서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들
-계간《불교문예》2018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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