쩌렁쩌렁한 하늘에 실금이 갔다
김경성
물의 잔가시들이 아프게 와 박힌다
진물이 흐르는 발목의 가시는 빼내지 않고 그대로 둔다
수없이 쏟아지는 가시들, 무릎을 찌르며 허벅다리까지 그득하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간다면 깊은 우물도 출렁이겠다
애초에 바다였을 그곳은 신들이 꽃을 피워서 꽃잎 걸어 두었던 곳,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시작되는 곳
꽃 금을 그은 길에 발자국만 남기고 어디만큼 가있을까
지붕에 박히지 못하고 흘러내리는 가시들 처마 밑으로 떨어진다
제 몸들을 서로 섞으며 순식간에 날카로움을 지우고 하나가 되어 흘러간다
숲에 박힌 가시는 나뭇잎 한 장 한 장에 잎맥 같은 길을 그려놓고는
푸른 눈동자가 되어서 곳곳에 눈물샘을 만든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숲이 자라고 새들의 꽁지깃이 젖는다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길을 단지 잊고 있었을 뿐이라고
실금이 갔던 하늘 어느 순간 쩍 하니 갈라져서 빛이 쏟아진다
살갗에 박혔던 가시는 사라지고 꽃잎이 겹겹이 붙어있다
- 계간《시산맥》 2019년 봄호
'丹野의 깃털펜 > 김경성 - 근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의 완성 / 김경성 (0) | 2019.04.09 |
---|---|
니무가 우는 듯, 물고기가 우는 듯 (0) | 2019.04.09 |
허공을 베어 문 그의 입이 둥그렀다 / 김경성 (0) | 2019.04.09 |
파파야 나무 꽃이 말하다 / 김경성 (0) | 2019.04.09 |
음계를 짚어가는 손가락이 낯설다 / 김경성 (0) | 2019.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