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을 베어 문 그의 입이 둥그렀다
김경성
느릅나무의 내부를 들여다본다
톱날이 몇 번 지나가자
새집이 바닥에 떨어지며 새들의 가계가 허물어져버린다
새를 품었던 나무는 이제 없다
순식간에 집을 잃은 새들이
날아가지 않고 나무가 있던 허공을 맴돈다
새들의 맨발이 검붉다
톱밥이 되어버린 그림자가 수북이 쌓여있다
바람에 조금씩 흩어지는 젖은 말들
이제 접어야 할 때가 왔다
나무의 즙을 먹고살던 바람이
그늘 자리를 휘감으며 머문다
달의 잔향이 남아있는 새벽
나무가 있던 자리에 정령들의 발자국이 깊다
여전히 나무는 나무
새들이 그루터기에 앉아있다
-<<문파문학>> 201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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