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인문학999 끝까지 바라보는 끝까지 바라보는 끝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끝이라는 말은 시작이라는 말 끝은 또 다른 시작이었다. 모두가 사라진 바다는 온통 은유의 세상이었다. 흐릿한 별이 제 모습을 조금씩 비춰주기 시작하고, 바다 깊숙이 가라앉은 태양은 빛으로 말을 하였다. 그 빛을 받아 적는 바다는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빛으로 말을 하는데, 그 말을 받아 적으려면 수십 만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속에 온전히 들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온 생애가 출렁거렸다. 잃어버린 것이 많아서 허무하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도 했었는데,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온전히 내 안에 있는 것을 내가 읽지 못한 것임을 어둠이 내려앉은 바다 끄트머리에 서서 깨달았다. 모든 정답은 내 안에 있다. 2022. 8. 31. 홀로인 것들을 위하여 아마도 홀로에서 시작되어 홀로에서 끝이 난다. 이 세상과 첫 입맞춤 할 때도 홀로였고, 이 세상 마지막 입맞춤도 홀로 일 것이다. 아마도 저, 많은 새떼는 홀로가 모여서 떼가 되었다. 홀로가 완전한 주체가 되지 못하면 떼는 무너진다, 의지하는 척 홀로이다가 무너진다. 완벽한 홀로가 되기 위해 소리 없이 내 안의 소리를 듣는 일 저 새떼들 속에서 완벽한 홀로인 새를 보았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추신 / 그저 바라보는 저 새들이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평화가 깃들기를... 2022. 8. 31. 여여하다 #3 새떼가 날아간 후 빛 여울지는 갯벌에 앉아서 빛의 농도를 재고 있었습니다. 수평선 쪽 열린 하늘이 눈부셨습니다. 문득, 한 마리 새가 날아왔습니다. 어두워지며 물이 들어오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바람과 새와 노을과 바닷물과 갯바닥이 마지막 빛을 내는 그 틈에 앉아서 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뷰파인터에 들어오는 저, 새의 몸에 초점을 맞추느라 얼마나 숨을 참았던지요. 새는 가만히 있지 않고 저, 저물녘 풍경을 갯바닥에 수를 놓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제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일까요? 잃어버린 말은 또 무엇일까요? 이 바다에 얼마나 더 와봐야 알 수 있을까요? 가고 또 가면 그 무언가 제 심장 속의 말들을 알아낼 수 있을까요? 단 한 번도 똑같은 풍경을 보여주.. 2022. 8. 29. 여여하다 #1 ' 복숭아빛으로 물든 바다에 앉아있는 새들을 만나러 갔던 것인데 어느 만큼 시간이 지났을까 새떼가 일제히 날아올라 서쪽 노을 속으로 날아갔습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새들의 말을 들었을 뿐인데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았는데 그만, 새들이 날아올랐습니다. 더 먼바다로 날아가서 완벽하게 붉은 태양빛이 비치는 바다에 앉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말들이 제게로 와서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괜찮다 괜찮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이 멀 것만 같았는데 눈이 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는데 오롯하게 뜨거운 마음이어서 다행이라고 우리는 우리는 사흘 동안의 여행을 계획했지만, 너무 아름다운 것을 많이 보아버린 마음 가라앉히기 위해 그만. 여행을 멈추기로 했습니다. 배롱꽃을 찾아갔던 아침 무섭게 .. 2022. 8. 28. 이 저녁 분꽃이 피었습니다 이 저녁 분꽃이 피었습니다. 참새 눈처럼 까맣던 분꽃 씨앗 한 알이 빚어낸 장엄입니다. 5년 전쯤 교동도 교동시장 어느 할머님께서 옛집 화단에 키우시던 분꽃 씨앗이 이렇게요. 맨드라미꽃은 순천 어느 시인의 옛집 담장 아래 피어있던 씨앗을 받아왔었습니다.. 작년에는 꽃봉오리가 무척이나 컸었는데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키만 우뚝 자라고 있습니다. 꽃씨를 받는 것은 언제나 제 마음 안에 벌써 꽃을 피워내는 것이어서 설렘입니다. 어렵고 힘들고 슬프고 아프고 분노하고 실망하고 반성하고 기쁘고 가슴 벅차고 . . .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그렇게 수많은 금이 가는 날들이지만 이렇게 세상은 아름답고 살아볼 만합니다. 2022. 08.28 , , , , , , , 작년에 피었던 맨드라미 꽃 - 장맛비에 꽃 무게를 이기지.. 2022. 8. 28. 배롱꽃 / 나무의 유적 나무의 유적 / 김경성 얼마나 더 많은 바람을 품어야 닿을 수 있을까 몸 열어 가지 키우는 나무, 그 나뭇가지 부러진 곳에 빛의 파문이 일고 말았다 둥근 기억의 무늬가 새겨지고 말았다 기억을 지우는 일은 어렵고 어려운 일이어서 끌고 가야만 하는 것 옹이 진 자리, 남아있는 흔적으로 물결무늬를 키우고 온몸이 흔들리도록 가지 내밀어 제 몸에 물결무늬를 새겨넣는 나무의 심장을 뚫고 빛이 들어간다 가지가 뻗어나갔던 옹이가 있었던 자리의 무늬는, 지나간 시간이 축적되어있는 나무의 유적이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고 무늬의 틈새로 가지가 터진다, 잎 터진다, 꽃 터진다 제 속에 유적을 품은 저 나무가 뜨겁다 나무가 빚어내는 그늘 에 들어앉은 후 나는 비로소 고요해졌다 - 시집 『와온』 문학의 전당.. 2022. 8. 26. 배롱꽃 / 남아있는 나날들 꽃이 피고 지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저 나무 곁을 지나갔을 것이다. 어떤 말을 남기고 갔을까? 어떤 말을 들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비처럼 나도 모르는 내안의 내가 나에게 주는 황홀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숨 참고 바라보았던 숨 참고 셔터를 눌렀던 나무의 숨을 바람의 궁전에 저장해놓는다. 2022. 8. 26. 배롱꽃 / 당신이 그리울 때마다 비늘 꽃을 피워 올렸다 물고기를 읽는 순서 김경성 그렇게 많은 비늘을 떼어내고도 지느러미는 한없이 흔들린다 물속의 허공은 잴 수 없는 곳이어서 헤엄을 쳐도 늘 그 자리에서 맴돌 뿐 휘감아 도는 물속의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당신이 그리울 때마다 비늘 꽃을 피워 올렸다 붉은 몸 이지러졌다가 다시 차오르기를 몇 번이나 했던가 뜨거움이 차올라서 목울대에 걸릴 때면 비늘 한 장씩 내려놓다가 한꺼번에 쏟아놓으며 길을 찾아서 갔던 것이다 석 달 아흐레 동안만 눈을 뜨고 당신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감기지 않는 눈을 덮은 비늘, 마지막 한 장 떼어내며 당신의 눈 속에 들어가 있는 나를 찾았을 때 뼈 마디마디에서 향긋한 냄새가 났다 여울에 화살처럼 박히던 소나기도 제 갈 길로 가고 뭉게구름 물컹거리며 돋아 오르고 있었다 비늘 다 떨구고 뼈만 남.. 2022. 8. 26. 물이 든 어떤 새의 말 #5 새 한 마리가 무리와 떨어져서 혼자 문자를 쓰고 있습니다. 젖은 입술이 마르지 않게 물에 적셔가며 콕콕 씁니다. 쉼표이거나 말줄임표이거나 어떤 말이어도 좋을 그런 문자를 씁니다. 이따금 물음표 같은 갯지렁이를 본문 바깥으로 내보내기도 하면서요. 세상의 모든 풍경은 단 한 번 뿐이라는 어느 사진작가의 글이 생각이 났습니다. 새 한 마리를 오래 바라봤습니다. 저도 저 새처럼 그런 시 한 편 쓰고 싶다고 간절히 원하면서요. 저, 새의 몸짓 하나하나 다 바라봅니다. 마치 그날인 듯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서 새를 바라봅니다. 2022. 8. 26. 물이 든 어떤 새의 말 #4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요. 저 새들의 이름을 한 마리 한 마리 불러주고 싶었습니다. 물결의 무늬가 다 다르듯 새들의 모습도 모두 다릅니다. 저는 새들의 이름을 부르고 새는 저의 이름을 부르고요.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단풍나무 속에서 어린 새가 살고 있습니다. 새벽 무렵이면 쓰쓰습 씁씁 겨우겨우 나오는 소리로 어미가 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것 같습니다. 그 새소리를 들으려고 문을 활짝 열어놓았습니다. 어린 새의 소리를 저는 압니다. 2022. 8. 26. 이전 1 ··· 5 6 7 8 9 10 11 ··· 10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