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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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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불고 고요한 / 김명리 바람 불고 고요한 김명리(1959~) 죽은 줄 알고 베어내려던마당의 모과나무에어느 날인가부터 연둣빛 어른거린다얼마나 먼 곳에서 걸어왔는지잎새들 초록으로 건너가는 동안꽃 한 송이 내보이지 않는다 모과나무 아래 서 있을 때면아픈 사람의 머리맡에 앉아 있는 것 같아요적막이 또 한 채 늘었어요 이대로 죽음이삶을 배웅 나와도 좋겠구나 싶은 바람 불고 고요한 봄 마당 2025. 1. 4.
완연히 붉다 / 김명리 완연히 붉다 김명리 일몰 무렵 천변의마구잡이 뒤엉킨 풀숲 가에작은 고양이 한 마리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 아가야 부르며 다가가니활시위마냥 등뼈를 곧추세우며빤히 나를 쳐다보는데 아아, 한쪽 눈 움푹 팬 눈구멍 속의눈자위가 없다! 눈동자가 없다! 이렇게나 투명한 붉은 빛을 보았나움푹 팬 눈구멍 속으로거대한 일몰이 들어가 앉았다 눈물자국 대신 묵시록을접힌 데 없는 광대무변을 꽃피웠다 완연히 붉다 ―격월간 《현대시학》 2024년 1-2월호-------------------김명리 / 1959년 대구 출생. 198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업. 시집 『물속의 아틀라스』 『물보다 낮은 집』 『적멸의 즐거움』 『불멸의 샘이 여기 있다』 『제비꽃 꽃잎 속』 『.. 2025. 1. 4.
검은염소의 저녁 / 김명리 검은 염소의 저녁​김명리​​어른어른한 물그림자 같은땅 속의 거미들이고요의 한가운데까지 몰려오는 이런 저녁엔​잘못 들어선 봄의 모퉁이 같은중국식당에서혼자 짜장면을 먹는다​채마밭이 한눈에 들어오는거름냄새 풍기는 국도변의 중국집엔손님이라고는 나 혼자뿐​어딘지 모르게낡은 예배당 기우뚱한 첨탑 같은 벼랑끝에서그토록 오래 서성이면서결코 뛰어내리지는 않는​한 마리 검은 염소의길다란 동공 같기만 한​검은 국수를 먹는다​꽃도 아직이고 잎도 아직인 봄날 저녁에​​ㅡ계간 《시인시대》(2024, 겨울호)-------------김명리 / 198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물 속의 아틀라스』『물보다 낮은 집』『적멸의 즐거움』『불멸의 샘이 여기 있다』『제비꽃 꽃잎 속』『바람 불고 고요한』. 산문집 『단풍객잔』이 있음. 2025. 1. 4.
산수국 / 김경성 https://www.cnp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46 [김경성] 산수국(문화앤피플) 문화앤피플 뉴스 = (문화앤피플) 이해경 기자 =www.cnpnews.co.kr 2024. 12. 31.
시 창작 강의 - 시의 세계로 창작하다 / 나호열 시인 https://youtu.be/66zMCnEEj_c?si=9olfXgO5tSfQ2Pus 2024. 12. 31.
물방울 / 이산하 물방울 이산하 아기 때 할머니가 달걀을 앞에 놓고나한테 잡아 보라고 했다.나는 방바닥을 겨우 겨우 기어가며움켜잡아 보려고 애썼지만손끝에 닿을 때마다 조금씩 밀려나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끝내 잡히지 않았다. 모슬포에서 알뜨르비행장을 지나고 송악산을 거쳐도어느 곳이든 다른 비가 오고 다른 바람이 불었다.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착하면 더욱 좋은 곳넓은 정원의 배롱나무 그늘 아래고요히 잠든 나무 주인의 이름이 작은 돌에 새겨진제주도 서귀포 저지문화예술인 마을의 김창열미술관 거기 난공불락의 물방울이 있었다.어릴 때 끝내 잡히지 않았던거기 난공불락의 달걀이 있었다.나는 달걀 하나를 잡으려고 한 게 아니라달걀 너머의 그 어떤 세계를 취하려고 한 것이었다. 바람은 불지 않고 깊이 잠들면 배롱꽃이 되어 .. 2024. 12. 31.
시를 잘 쓰기 위한 몇 가지 방법 / 유홍준 교동도 느티나무 2018년 3월, 저물 무렵시를 잘 쓰기 위한 몇 가지 방법- 경험을 바탕으로유홍준 1. 삶에서 찾아라 안녕하십니까. 시를 쓰는 유홍준입니다.저는 오늘, 여태 시를 써오면서 경험한 몇 가지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할 생각입니다. 제가 실제 아는 게 별 게 없어서이기도 하구요, 시중에 많은 이론서들이 나와 있지만 그것들이 시 쓰기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또 그렇기도 합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공장 노동자로 일할 때 등단을 했습니다. 하얀 종이를 만들던 제지공장 제지공이 저의 직업이었지요. 꽤 오랜 기간 그 일을 했는데요, 종이를 만들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여러 가지 남다른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종이공장 제지공인 시인! 나름 멋이 있지 않나요?.. 2024. 12. 28.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 김이듬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김이듬 해질녘 남쪽 해변에 도착했다맨발로 갯벌 밟으며 바다 가까이로 걸어갔다파도에 온종일 들떠 있다가물이 빠지자 바닥에 내려앉은 부표 옆에서나는 노을을 기다렸고 너는 고둥 잡자며 주머니에서 비닐봉지를 꺼냈다 고둥이 맞아?여기 많다고동이 맞는 말이야? 지금이 간조야? 만조야? 너는 뛰어다니며 큰소리로내게 묻는 건지자신에게 묻는 건지 정작 물어보니까헷갈리잖아 어두워가는 갯벌 위엔 길지 않은 금이 많다금을 따라가면 고둥이 있다 길인지흔적인지자취인지생존 발각될 단서인지 고둥이 금을 그으며 기어가고 있다고둥이 온몸으로 밀고 나가고 있다 부득이 나는 어느 시인의 말을 떠올리며이토록 오래 고둥을 응시한 적 없었다는 걸 알았다 어둠이 급격하게 해변을 덮고 있다모든 발자취도 바닷물에 깨끗해.. 2024. 12. 28.
뭇국이 생각나는 눈 오는 밤 / 김형로 뭇국이 생각나는 눈 오는 밤 김형로 아버지 그곳에도 뭇국이 있나요 먼 부엉이 울음 같이 눈은 오고하얀 숨으로 밤은 지워지고귀 세우면 눈 쌓이는 소리 사락사락 봄 춘 자 들어간 그 도시 기억나네요어린 우리는 눈굴로 숨어들고눈은 깔깔 웃음을 삼키고우린 늦은 밤 뭇국을 먹었죠 나 어쩌다 세상에 나와져서아버지를 만나눈 뭉치듯 살과 뼈 붙이고이제 먼 나라의 아버지를 생각하는 눈 오는 밤 여물지 못해서 어디 쓰겠냐하얀 공책 뒤 적어놓은 그 아들,그럭저럭 뭇국 정도는 되었으니 눈 오는 밤창을 열면 아름드리 팽나무 위로사분사분 세상 커지는 소리눈굴 닫히는 소리 아득한—뭇국 같이 먹고 싶네요세상은 박꽃처럼 밝아오고아버지와 나는 기억으로 환해지고 아무렇지도 않은 뭇국 앞에사각사각 달그락달그락아버지와 나는 그때처럼 .. 2024. 12. 28.
회색 코트 / 강기원 회색 코트 강기원 이른 아침회색 코트 속에 몸을 구겨 넣는다날로 헐거워진다몸이 줄어드는 걸까할 일은 점점 늘어나는데 헐렁한 코트를 입고 지하철 속에몸뚱이를 간신히 밀어 넣는다날로 사람들이 많아진다인구가 줄어 큰일이라는데 사무실에 도착해바퀴 달린 검은 의자에 털썩의자는 날로 움푹 패인다체중은 줄어드는데 바퀴가 달렸으나 달리지 않는의자점점 웅덩이가 되어간다, 언젠가의자 속에 빠져 죽었다는 기사가 뜰지도 모른다 후줄근한 회색 코트 한 벌이퇴근 시간의 지옥철 속을 비집고 들어간다 코트 속에 있어야 할 몸이 없다 아뿔사!코트는 몸뚱이를 잊고, 잃고혼자서 실려간다 통조림 속 정어리처럼 꽉꽉 들어찬사람들 사이에서발도 없이 붕 뜬 채 ―계간 《시인시대》 2024 겨울---------.. 2024.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