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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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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벽 (외 2편) / 조용미 격벽 (외 2편) ​    조용미 ​​ 과거가 돌이킬 수 없이 달라지려면 현재가 얼마나 깊어야 하는 걸까얼마나 출렁여야 하는 걸까​ 피사로의 그림 속 나무들처럼서 있는 겨울 ​색채를 만지면 감정이 자라난다​ 붉고 푸른 색의 나무들처럼 가만 서 있어도 천천히 끓어오르는 온도가 있다​ 언젠가는 마음을 만질 수 없게 되는 날이오고야 만다​ 방사선이 지나간다, 머문다없다냄새도 색도 형태도​ 아무렇지도 않다​ 시간이 지나면 구토를 한다 안개상자를 만들어 그것의 흔적을 들여다 볼 필요가 없다 과거가 돌이킬 수 없이 달라지려면 현재에 깊이 들어가야 한다풍덩풍덩 ​ 귀   귀퉁이에도 귀가 내장되어 있을까보이지 않는 귀가 붙어 있는지 살펴볼까귀퉁이에도 귀의 청력이 있을까귀퉁이는 모서리, 몸에 납작하게 붙어 있거나 볼록 .. 2024. 6. 18.
당신이라는 제국 / 이병률 당신이라는 제국    이병률      이 계절 몇 사람이 온 몸으로 헤어졌다고 하여 무덤을 차려야 하는 게 아니듯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찔렀다고 천막을 걷어치우고 끝내자는 것은 아닌데    ​봄날은 간다    ​만약 당신이 한 사람인 나를 잊는다 하여 불이 꺼질까 아슬아슬해 할 것도, 피의 사발을 비우고 다 말라갈 일만도 아니다 별이 몇 떨어지고 떨어진 별은 순식간에 삭고 그러는 것과 무관하지 못하고 봄날은 간다   ​ 상현은 하현에게 담을 넘자고 약속된 방향으로 가자 한다 말을 빼앗고 듣기를 빼앗고 소리를 빼앗으며 온몸을 숙여 하필이면 기억으로 기억으로 봄날은 간다    ​당신이, 달빛의 여운이 걷히는 사이 흥이 나고 흥이 나 노래를 부르게 되고, 그러다 춤을 추고, 또 결국엔 울게 된다는 술을 마시게.. 2024. 6. 18.
모란의 저넉 / 김경성 [김경성 시] 모란의 저녁 - https://www.cnp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99 [김경성 시] 모란의 저녁모란의 저녁 김경성물의 결이 겹겹이 쌓이는 저녁이 오고 있다멀리 왔으니 조금 오래 머물고 싶다고지친 어깨에 내려앉는 노을빛은 붉고무창포 바다 왼쪽 옆구리에 쌓이는모란의 결누군가 마www.cnpnews.co.kr#문화앤피플 #허애경기자 #모란의 저녁 #김경성시인 2024. 6. 14.
골목 / 김병호 골목 ​ 김병호 ​ 하나씩 가져가세요​ 피아노를 버리고 화분을 버리고 의자를 버리고​ 당신은 오래오래 서성입니다​ 울음에 그을린 얼굴로 우레와 폭우를 감춥니다​ 잊어야 지켜지는 안부는 당신의 몫입니다​ 발목이 얇고 입술이 얇은 당신은 낯설고 다정한 귓속말로 묻습니다 사랑이라 부르면 안되는 마음이 있냐고, 한낮에 겹겹의 별자리를 긋는 마음을 아냐고 ​ 돌연하고도 뜻밖인 자리에 당신의 뜨거운 숨처럼 아무런 궁리도 없이 그저 밀어내야 하는 당신의 눈빛만 반짝입니다 ​ 사랑을 용서해야 하는 마음을, 당신은 아직 모릅니다 ​ 마음에서 놓여날 수 없는, 이미 저편의 일입니다 ​ ㅡ계간 《시인시대》 2024년 봄호 -------------------- 김병호 / 1971년 광주 출생. 200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2024. 6. 11.
떠다니는 관棺 / 김승필 떠다니는 관棺 김승필 달의 신비가 사라지는 것일까 떡방아를 찧는 토끼가 사라졌다고 북미 나바호 인디언들은 신성한 달을 인간의 무덤으로 삼겠다는 말에 바알끈, 무인 달 착륙선 페레그린이 66명의 유골과 DNA가 담긴 캡슐을 싣고 달에 착륙하지 못한 채 지구 대기권을 돌고 돌다 속수무책 태평양 상공에서 폭발했다는 전언 아직 운구되지 못한 관棺 앞에 하루하루를 버린다 어제보다 우주가 조금 더 옮겨 앉았다* *장옥관, 「일요일이다」, >, 문학동네, 2022. - 계간 NO99. 2024년 여름호 #계간 NO99 2024년 여름호 #김승필시인 #떠다니는 관棺 2024. 6. 11.
심해어 / 김경성 daum 이미지 옮겨옴 심해어 김경성 깊은 곳에 사는 물고기는 빛의 그물에 걸러지는 저음의 빛마저 다 지워버린 몸을 키운다 벗겨낼 수 없는 눈꺼풀은 생을 이끄는 길의 눈 보이지 않으나 몸의 감각으로 소리를 보는 예측할 수 없는 신비 집도 절도 없이 텅 빈 내 몸의 비늘을 긁어내며 가보지 못한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상처 속으로 짠물이 들어가도 바닷물의 농도에 나를 맞추었다 절여진 상처는 어느 순간 덤덤했다 바다의 소실점이 되어 살아가는 심해어 바다 너머로 가고 있다 -2024년 여름호 2024. 6. 6.
적벽 외 2편 / 조용미 격벽 (외 2편) ​ 조용미 ​​ 과거가 돌이킬 수 없이 달라지려면 현재가 얼마나 깊어야 하는 걸까 얼마나 출렁여야 하는 걸까​ 피사로의 그림 속 나무들처럼 서 있는 겨울 ​색채를 만지면 감정이 자라난다​ 붉고 푸른 색의 나무들처럼 가만 서 있어도 천천히 끓어오르는 온도가 있다​ 언젠가는 마음을 만질 수 없게 되는 날이 오고야 만다​ 방사선이 지나간다, 머문다 없다 냄새도 색도 형태도​ 아무렇지도 않다​ 시간이 지나면 구토를 한다 안개상자를 만들어 그것의 흔적을 들여다 볼 필요가 없다 과거가 돌이킬 수 없이 달라지려면 현재에 깊이 들어가야 한다 풍덩풍덩 ​ 귀 귀퉁이에도 귀가 내장되어 있을까 보이지 않는 귀가 붙어 있는지 살펴볼까 귀퉁이에도 귀의 청력이 있을까 귀퉁이는 모서리, 몸에 납작하게 붙어 있거나.. 2024. 6. 5.
풍등(風燈) / 강인한 풍등(風燈) 강인한 그대의 손이 사라진다. 전 생애의 적막이 사라진다. 제 뿌리를 지하에서 지상으로 끌어올려 나무들이 배경에서 떠나가는 시절이다. 어두운 하늘 속 저마다 혼자씩 사라진다. 그대의 손이 내 비루한 추억을 뿌리치고 사라진다. 어두운 하늘 속을 하늘보다 더 어두운 마음 안고 이승엔 듯 저승엔 듯 낙엽이 진다. ―시집 《장미열차》 2024 《불교평론》 2024년 여름호 2024. 6. 4.
분홍은 언제나 / 김경성 분홍은 언제나 김경성 분홍이라 하면 물 따라 흘러가는 잠두리 길 개복숭아 꽃이지요 꽃 뭉게뭉게 피어나면 강 건너에서도 몸이 먼저 나가고요 맨발로 오는 연두가 있어 산벚꽃 흩날리며 저기 저기 분홍 꽃물 바람이 길을 감싸 안고 불어오지요 분홍은 먼 데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정릉 골목에서도 개복숭아 꽃물 켜면 가지에서는 심줄이 보였어요 쏘아 올리는 푸른 화살촉, 시위를 당기는 것은 새들이었지만 화살을 맞는 것은 나무 아래 서성이는 사람이었어요 어느 날 뿌리째 뽑혀 나가는 개복숭아 나뭇가지 껍질을 벗겨냈어요 푸른 피가 끈적하게 손끝에 묻어나며 긴 뼈가 하늘로 치솟았지요 나무가 피워 올리던 분홍도 사라지고 해마다 피었던 그 자리에 분홍 그림자만 넘실거려요 껍질 벗겨낸 개복숭아 가지가 점점 흰 뼈가 되어가요 분홍을.. 2024. 6. 4.
분홍은 언제나 / 김경성 https://naver.me/Gvd8337v 분홍은 언제나 / 김경성분홍은 언제나 김경성 분홍이라 하면 물 따라 흘러가는 잠두리 길 개복숭아 꽃이지요꽃 뭉게뭉게 피어나면강 건너에서도 몸이 먼저 나가고요 맨발로 오는 연두가 있어산벚꽃 흩날리며link.naver.com 2024.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