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없이 핀 꽃 (외 1편)
정선희
엄마는 금기어였다
금기어를 키우지 못해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던 그녀의 손이 목련 비늘처럼 떨어졌다
새는 남쪽 나라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목에 걸린 가시를 밥과 함께 꿀꺽
거절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울지 않는 아이의 눈꼬리는 길다
한글보다 눈치를 더 빨리 깨친다
엄마 없는 표시를 내지 않으려고
잘 숨기고 들키지 않는 법을 배웠다
오랫동안 무언가 목에 걸려
물을 마시고 기침을 해도 내려가지 않는다
말을 할 때마다 캑캑거렸다
의사가 매핵기라고 해서
잔기침을 쏟았다
삼켜지지 않는 말들을 울대에 붙인 채 살고 있나요?
매화꽃 지면 탐스런 매실과 함께
엄마라는 시큼한 금기어도 주렁주렁하다
새를 바라보는 서쪽의 시간
한 몸짓이 생의 단면에
부딪히고 있다
유리벽에 무성한 나무 그림자와
쏟아지는 햇빛 사이로
날마다 찾아오는 새의 콩트르주르
작은 나뭇가지에 앉아 유리벽을 쪼며
창에 엉기는 햇살 서랍에 비밀을 기록하고 있다
캄차카와 아무르를 지나
새는 유리의 강을 건넌다
새가, 나를 닮은 새가
바람과 일렁이며 구름 따라 간다
투명하고 단단한 경계
새는 끝내 유리창을 이해하지 못하고 떠날 것이다
추운 곳에서 추운 곳으로 향하는
새들의 이동 경로를 이해할 순 없지만
해가 천천히 서쪽을 향해 돌아설 때
새의 행로가 경계를 넘어
죽음을 벗어난 세계로 이어지기를 바라본다
―시집 『엄마 난 잘 울어 그래서 잘 웃어』 2024.11
----------------------
정선희 / 1969년 경남 진주 출생. 2013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 『푸른빛이 걸어왔다』 『아직 자라지 않은 아이가 많았다』 『엄마 난 잘 울어 그래서 잘 웃어』.
'이탈한 자가 문득 > 향기로 말을거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로디지털단지를 지나간다 / 조하은 (0) | 2025.02.21 |
---|---|
그 섬 거문도 / 최경선 (0) | 2025.02.21 |
겨울을 잃고 나는 (외 2편) / 한혜영 (0) | 2025.02.10 |
레몬의 창가에서 (외 2편) / 지관순 (1) | 2025.02.10 |
가로수 옆에 가을이 머뭇거리는 사이 / 한영수 (0) | 2025.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