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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詩441

강가에서 / 나호열 강가에서 나호열 물비린내가 난다. 거기 누구? 잠시 멀어졌다가 이내 돌 아오는 풀 냄새. 무엇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자 리에 머물겠다고 뿌리내리려는 꿈이 꿈틀거리며 울고 있 다는 것이다. 더듬거리는 손에 정적이 잡혔다가 저만치 안개로 달아나 버리고 훅, 흐느낌처럼 물비린내가 난다. .. 2006. 4. 13.
건봉사, 그 폐허 건봉사 / p r a h a 건봉사, 그 폐허 / 나호열 온몸으로 무너진 자에게 또 한번 무너지라고 넓은 가슴 송두리째 내어주는 그 사람 봄이면 이름 모를 풀꽃들에게 넉넉하게 자리 내어주고 여름에는 우중첩첩 내리쏟는 장대비 꼿꼿이 세워주더니 가을에는 이 세상 슬픔은 이렇게 우는 것이라고 풀무 치, 쓰르.. 2006. 4. 13.
음지식물 / 나호열 음지식물 나호열 태어날 때 어머니가 일러주신 길은 좁고 어두운 길이었다 기억할 수 없지만, 내가 송곳이 아니었다면 어머니의 울음은 그렇게 푸르지 않았을 것이다. 몸에 남아있는 푸른 얼룩은 고통의 살점 알 수 없는 적의는 죄와 길이 통하고 먼저 내 살점을 뚫고 나서야 허공을 겨눈다 이른 봄 벌.. 2006. 4. 13.
달 나호열 뼈 보일 때까지 덜어내어도 모자라지 않는 마음 가난해질수록 풍성해지는 사랑 채울만큼 채우고 넘치는 것 까마득히 버리고 휘적휘적 먼 길을 가는 사람 - 시집 『망각은 하얗다』1990년 2006. 4. 9.
바람으로 달려가 p r a h a 바람으로 달려가 / 나호열 달리기를 해 보면 안다속력을 낼수록 정면으로 다가서서더욱 거세지는 힘그렇게 바람은 소멸을 향하여 줄기차게 뛰어간다는 사실을그러므로 나의 배후는 바람으로바람으로 그대에게 다가간다는 것을달리기를 해 보면 안다소멸을 향하여 달려가는 바람과 멀어지면.. 2006. 4. 6.
낭만에 대하여 / 나호열 낭만에 대하여 나호열 낭만이라는 찻집은 바닷가에 있다 방파제 끝까지 가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문은 항상 열려 있다 대부분 서서 있게 마련이지만 음악은 늘 신선하다 적당한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처럼 테이프는 조금 늘어져 있다 며칠씩 묵고 가는 사람은 없다 밀물이 오면 지워지는 발자국 몇 개 .. 2006. 3. 28.
삼릉 숲 / 나호열 삼릉 숲 나호열 소나무 숲을 지났을 뿐이다 화살 촉 같은 아침 햇살이 조금씩 끝이 둥글어지면서 안개를 톡톡 칠 때마다 아기 얼굴 같은 물방울들이 잠깐 꽃처럼 피었다 지는 그 사이를 천 년 동안 걸었던 것이다 너무 가까이는 말고 숨결 들릴 듯 말 듯한 어깨 틈만큼 그리워했던 것 순간에도 틈이 있.. 2006. 3. 28.
새털 구름 / 나호열 새털구름 나호열 오늘은 우물 속에 구름으로 떠 있는 이름을 부른다 내 속에 잠겨 있으면서도 늘 고개를 들어야 보이는 그 얼굴이 보고 싶어 이름을 부르면 얼굴이 사라지고 얼굴을 바라보면 이름이 잊혀지는 작은 새 깃털 날린다 2006. 3. 28.
기침소리 / 나호열 기침소리 나호열 떠나고 싶을 때 그러나 떠나지 못할 때 마음의 깃발은 저 홀로 펄럭인다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바람이 지나간 것이지 오래된 세월의 지도는 갈피마다 안개를 피어올리고 터벅거리는 발자국 뒷산으로 넘어간다 덮었다가 다시 펼쳐드는 지도 속의 길들은 비스듬히 기울어 몇 번.. 2006. 3. 28.
사랑한다 사랑한다 / 나호열 누가 처음 그 말을 가르쳐 주었을까 나는 누구에게 그 말을 처음으로 전해 주었을까 어둡고 습기찬 곳으로 무릎을 꺾고 허리를 구부려야 보이는 낮은 사람들 사이에 한 알의 씨앗을 소중히 심듯이 그날에, 눈물은 한없이 맑아져 갔던가 누가 처음 그 말을 가르쳐 주었는지 기억이 나.. 2006. 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