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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내가붉었던것처럼당신도붉다』80

물고기를 읽는 순서 그 해 여름 명옥헌 2017. 08. 20. 명옥헌 자미화 물고기를 읽는 순서 김경성 그렇게 많은 비늘을 떼어내고도 지느러미는 한없이 흔들린다 물속의 허공은 잴 수 없는 곳이어서 헤엄을 쳐도 늘 그 자리에서 맴돌 뿐 휘감아 도는 물속의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당신이 그리울 때마다 비늘 꽃을 피.. 2019. 8. 12.
연곡사 동부도 연곡사 동부도 / 프라하연곡사동부도 / 김경성 빗방울 소리에 밤새 뒤척거리던 수련이 몸 여는 시간이었다 물큰한 향기 내뿜는 매실의 사리가 나무 아래 그득했다연꽃은 물속 깊이 자맥질하고 있는지 연잎 그림자만 흙탕물에 젖었다 부도 상대석의 앙련仰蓮, 꽃잎 뒷장에 새겨놓은 자리.. 2019. 8. 12.
따뜻한 황홀 The Colours of Love 사랑의 색채 따뜻한 황홀 따뜻한 황홀 김경성 어떤 나무는 절구통이 되고 또 다른 나무는 절굿공이가 되어 몸을 짓찧으면서 평생을 살아간다 몸을 내어주는 밑동이나 몸을 두드리는 우듬지나 제 속의 울림을 듣는 것은 똑같다 몸이 갈라지도록, 제 속이 더 깊게 파이도록 .. 2019. 8. 12.
시위를 당기다 시위를 당기다 / 김경성 바닷길을 찾고 있는 눈이 흑요석 빛이다 태풍의 눈이 바닥까지 들여다보며 방점을 찍을 때마다 몸에 그어지는 사선으로 바닷속 길을 읽었다 온몸이 물결에 함몰되어 심하게 흔들려 본 적 있는 사람만이 그의 몸을 열고 내력을 꺼내 볼 수 있다 어떤 것은 독화살을.. 2019. 8. 12.
늙은 집 늙은 집 김경성 슬픔도 오래 묵히면 붉은 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가 달팽이관으로부터 시작된 실금이 문 쪽으로 흘러가더니 문턱에서 멈추었다 이내 싸르락 소리를 내며 뜨거운 물이 아래층 천장을 타고 흘러갔다 밤의 정적을 깨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내 속에서 나온 뜨거운 숨도 순.. 2019. 8. 12.
빈방 / 김경성 The Nest / By: Ron Jones 빈방 / 김경성 어떤 새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꿈을 꾸었던 방이었을까 밤새 받아놓은 별똥 추스려서 바람구멍을 막으며 구름을 뜯어다가 날마다 다른 모양의 지붕을 만들어 놓고 바람의 실패를 굴리며 살았던 방이었을까 그가 무지개를 뛰어넘어서 여우울음소리 깊은.. 2019. 8. 12.
적산가옥 적산가옥 / 김제에서 적산가옥 / 김경성 그가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도 그의 마음속에 쌓아둔 것도 모두 흙 한 줌에서 시작되었다 설겅설겅 썰어놓은 짚단을 넣고 흙을 버무려서 대나무 엮은 발에 대고 벽을 쌓았다, 백 년 전의 일이라고 했다 시멘트 껍데기 한 꺼풀 벗겨 낼 때마다 .. 2019. 8. 12.
적멸의 방 적멸의 방 김경성 창문이 없는 방에 들었다 불쑥 들어오는 바람이 방안을 휘젓고 다니다가 알몸으로 빠져나가며 문설주에 걸린 바람의 옷이 함께 흔들렸다 밤이면 작은 새들이 깃털을 다듬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방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배흘림기둥을 타고 끈적하게 빗물이 흘러내.. 2019. 8. 12.
내밀한 집 / 김경성 내밀한 집 / 김경성 1 지난밤 누가 내려와서 재의 시간을 보냈을까 혼유석 위에 눈이 쌓여 있다, 고석(鼓石)에 새겨 넣은 귀면(鬼面)은 얼굴을 가리고 형체만 보여준다 장명등 화창 너머로 보이는 굽은 소나무 아래 문인석의 미소는 단아하다 릉 아래에서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지면서.. 2019. 8. 12.
나무 속으로 들어간 물고기 나무 속으로 들어간 물고기 / 김경성 갈비뼈 선명하게 드러난 나무의 가슴 속으로 붉은 지느러미를 흔들며 물고기 한 마리 들어간다 하늘을 우러를 때마다 우뚝하니 서 있던 푸른 가슴을 꿈속에서도 잊지 못했다 발아래로 흘러가는 나무의 길은 끝이 없는 길이어서 수만 번씩 제 몸의 비.. 2019. 8.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