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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내가붉었던것처럼당신도붉다』80

팥배나무 / 김경성 웹진 시인광장 선정 2013년 올해의 좋은 시 1000 237 팥배나무 김경성 붉은 눈을 먹은 새들이 부리를 씻는 것을 보았다 나뭇가지를 태우며 솟아오르는 태양의 중심을 향하여 날아가는 직박구리의 몸이 물들면서 팥배나무의 붉은 눈이 새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밤새 수묵화를 그리던 당신은 .. 2019. 8. 12.
울음의 바깥 울음의 바깥 김경성 백 년이 넘는 시간이 폭설에 무너졌다 생살이 찢기어지고 뼈마디가 툭툭 부러졌다 중심을 잡아주는 뿌리는 지층 속의 기운을 받아들였던 곳 우지끈 부러질 때, 울음의 파문은 바깥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거북이 등 같은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다 해마다 적어놓은 말.. 2019. 8. 12.
산당화 옆 느티나무 산당화 옆 느티나무 김경성 단지 예감할 뿐, 어디로 흘러가는지 나는 모르겠다 얼마나 오래 허공의 지문을 읽고 있었는지 한쪽 어깨가 저리다 알맞은 햇빛과 물과 바람 그리고 한 줌의 마음이면 괜찮다고 했지만, 움푹 팬 옆구리를 치고 들어오는 견딜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실낱같은 어떤.. 2019. 8. 12.
각 / 김경성 오동나무 통꽃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날 나는 맨발이었다 오래전 그 사람이 걸어서 과거시험을 보러 갔던 옛길이라고 했다 아직도 먹을 갈고 있는지 계곡물은 자꾸만 음표를 그려대고 새들은 기억 속의 지도를 펼쳐서 해찰 한번 하지 않고 산을 넘어갔다 비 그친 후, 수음문.. 2019. 8. 12.
느티나무 룽다 느티나무 룽다 김경성 불이 지나간 자리가 차다 그을음이 울음으로 읽히는 석조대좌에 바람과 구름이 빚어내는 이끼꽃이 뒤덮여 있다 불길이 지나간 그 속에는 스치기만 해도 전생애가 흔들리는 간절한 기도가 들어 있다 귓가를 스치던 것들의 소리와 멀리 혹은 가까이 바라봤던 것들을.. 2019. 8. 11.
녹슬지 않는 잠 녹슬지 않는 잠 김경성 방문이 내려앉았다 늙은 경첩을 물고 있는 못의 자리가 깊다 나무젓가락 분질러서 밀어 넣고 망치질을 했다 풀어진 문틀, 바람의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틈으로 새 못을 밀어 넣었다 언젠가 다시 벌어질 틈을 위하여 나무문을 세우는 못은 나사못이어.. 2019. 8. 11.
등뼈를 어루만지며 등뼈를 어루만지며 / 김경성 종달리 해변 둥그렇게 휜 바다의 등 위에 올라앉아 내 등뼈를 어루만졌다 목뼈에서부터 등뼈를 타고 내려와 꼬리가 있던 곳까지 천천히 만졌다 오롯이 솟아있던 어린 등뼈 오간 데 없다 살집 속에 숨어버린 등뼈는 손가락으로 여러 번 어루만져야 드러났다 .. 2019. 8. 11.
선암매 선암매(仙巖梅) / 김경성 어쩌자고 그 시간에 스님은 꽃 속에 들어앉았을까 예불소리 꽃문을 넘어서 몸피 가득 이끼꽃이 피어 있는 고매의 허리를 휘감으며 매화 꽃잎 뿌려놓은 흙 담장 기왓장에 내려앉더라 삼백예순 닷새 동안 몸 위에 이끼꽃 올려놓은 600여 년 된 선암사 고매, 꽃 지는 .. 2019. 8. 11.
가을 숲의 숨 가을 숲의 숨 / 김경성 한 그루 나무가 되어 서 있고 싶네 오래된 느티나무 그림자 끝나는 곳, 직박구리 꼬리 펴고 말채나무의 말을 갈참나무에 전하는 그 사이 그대 잠시 쉬었다 가라고 빙어입술 같은 잎으로 그린 악보 펼쳐놓고 노래 부르겠네 바람이 한 번씩 제 숨을 내려놓을 때마다 .. 2019. 8. 11.
허공의 무덤 허공의 무덤 김경성 수련 꽃 다 진 연못이 적막하다 이따금 들여다보고 가는 새들이 아니었다면 원시의 늪일 것 같은 저곳은 뻘 속에 뿌리를 내려서 식물들이 처음으로 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중생대의 시간을 끌어내어 울컥울컥 꽃이 피어나게 하는 근원을 생각하게 해준다 구름 걷힌 허.. 2019. 8.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