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매(仙巖梅) / 김경성
어쩌자고
그 시간에 스님은 꽃 속에 들어앉았을까
예불소리 꽃문을 넘어서
몸피 가득 이끼꽃이 피어 있는 고매의 허리를 휘감으며
매화 꽃잎 뿌려놓은 흙 담장 기왓장에 내려앉더라
삼백예순 닷새 동안 몸 위에 이끼꽃 올려놓은
600여 년 된 선암사 고매, 꽃 지는 날이 없다
이른 봄, 꽃 여는 것은 스쳐 가는 바람을 붙잡아 놓은 것이라고 바람의 꽃이라고
잠시 피었다가 사라지는 눈물의 꽃이라고
속 깊은 곳에 묻어놓은 시간의 흔적이 피워 올리는
푸른 이끼꽃이 몸꽃이라고
원통전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동백꽃은
응진전의 덩굴무늬까지 물들여 놓았더라
고요 속에 몸과 마음을 넣으니
아무런 소리도 나지않는 무량한 고요의 깊이
내 몸에도 가득히 젖은 꽃이 피어나더라
*고려시대 대각국사가 심었다고 하는 수령이 600년 이상 된 선암사 매화
『우리詩』2011년 12월호, 신작 소시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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