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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내가붉었던것처럼당신도붉다』83

세렝게티의 말[言] / 김경성 세렝게티의 말[言] / 김경성 세렝게티의 밤은 밀림 속 롯지에 전기가 끊기는 밤 열두 시에 시작된다 램프를 든 마사이족 청년의 눈으로 들어간 별 몇 개가 후드득 방문 앞에 떨어지는 시간, 밀림 속에서 짝을 지어 다니는 임팔라, 톰슨가젤의 킁킁거리는 사랑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단 하.. 2019. 8. 13.
암연의 시간 암연의 시간 김경성 나의 전생은 청동빛 너울을 걸친 다리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건너서 물의 사리가 쌓이는 재인폭포로 들어갔다 절벽에서 살아가는 돌단풍은 첫서리가 내리도록 오지 않았고 누군가 쌓아올린 돌탑은 공룡 알처럼 부화하지 못하고 물속에서 화석이 되어갔다 길의 .. 2019. 8. 13.
풀등 / 김경성 풀등 김경성 기억의 집은 견고해서 무너지지 않는다 축대 밑이 온통 암벽이다 창호지 문에 구멍을 내고 방안을 들여다본다 자글거리는 생각들과 빛바랜 사진이 수북이 쌓여 있어서 시간을 잊으면 빠져나올 수가 없다 기억의 집을 찾아서 하루에 두 번씩 오는 고래가 있다 대이작도 큰 풀.. 2019. 8. 13.
야크의 눈물 야크의 눈물 김경성 최초의 사람이 걸어갔던 길 위에 야크 떼가 서 있다 야크의 눈에 들어간 설산이 높다 빙하기의 시간이 해체되는 순간이다 더러는 뿌리까지 뽑혀서 올라오는 마른 풀을 되새김질하며 따뜻한 젖으로 사람들의 심장을 어루만진다 맨발로 서 있는 설산은 수백 겁 설층으.. 2019. 8. 13.
목기미 해변*에 닻을 내리다 목기미 해변*에 닻을 내리다 / 김경성 끊어진 전선을 목에 걸친 전봇대, 백사장에 발목을 묻고 있다 전선을 타고 지나다니던 오래된 말들이 길 위에 떨어져 있다 떨어져서 굴러다니던 말들은 전봇대와 전봇대를 넘나드는 새들의 몫이다 먼 곳의 소식도 그의 몸을 타고 흘러왔고 추억으로 .. 2019. 8. 13.
바다로 간 목마 바다로 간 목마 김경성 한 떼의 적란운이 머물다 간 뒤 섬이 흔들렸다 몇 번 꺾여서 바닷속으로 들어간 번개는 다시 되돌아 나오지 못했다 그 열기에 바다는 저릿한 붉은색으로 물들고는 한다 비스듬히 닳아버린 신작로 끝에 바다가 걸터앉아 있었다 낡은 편자를 갈아 끼우지 못하고 먼 .. 2019. 8. 13.
섬진강의 봄 섬진강의 봄 김경성 윤슬 꽃 핀 긴 혀를 내밀어서 여자를 감아올렸다 혀를 더 길게 내밀어서 벚나무도 한 번 더 감아올렸다 달이 물었다가 내려놓은 은빛 비늘 물고기들이 강의 등허리에서 자꾸만 튀어 올랐다 강물의 입속에는 수만 가지 혀의 돌기가 있어서 입맛을 다실 때마다 그녀의 .. 2019. 8. 13.
물컹한 화석 물컹한 화석 김경성 달빛에 절인 그녀의 둔부를 할퀴며 미끄러지는 것들이 있다 갯고랑에 박힌 채 심호흡을 한다 벗어놓은 옷자락으로 만든 날개를 헤링본스티치 한다 덧대어 붙였던 구름은 이미 오래전 둔부의 적도 근처에서 사라졌다 엎드려서 숨을 쉴 때마다 들이켜지는 것이 있다 .. 2019. 8. 13.
해인사 장경판 해인사 장경판 김경성 오래된 숲을 들여다 본다 행과 연을 맞추어서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가 모두 숲의 중심이 되는 햇빛은 사라지고 오직 그림자와 바람만이 가득한 숲 그림자 가득 머금은 채 제 몸을 훑고 가는 바람의 탯줄을 붙잡고 서 있어야만 하는, 관절 마디마디에 짜디짠 바닷.. 2019. 8. 13.
삼층석탑 삼층석탑 김경성 신륵사 강월헌江月軒 우물천장의 꽃들과 삼층석탑은 여강의 물소리로 시간을 읽는다 소리의 문자로 각인되는 암각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제 속으로 파고들고 강물에 발목을 묻은 너럭바위는 초석이 되어서 묵언 수행 중이다 한떼의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 뒤집으.. 2019. 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