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크의 눈물
김경성
최초의 사람이 걸어갔던 길 위에 야크 떼가 서 있다
야크의 눈에 들어간 설산이 높다
빙하기의 시간이 해체되는 순간이다
더러는 뿌리까지 뽑혀서 올라오는 마른 풀을 되새김질하며
따뜻한 젖으로 사람들의 심장을 어루만진다
맨발로 서 있는 설산은
수백 겁 설층으로 바다의 경계를 지워가며
그 속에서 새어나오는 눈 녹은 물로 침묵하고 있는 것들을
풀어내고 있다
부화하지 못했던 나비의 성충이 막 날개를 펴는 이곳이
수억 년 전에 이곳이 바다였다는 풍문이 들리기도 했다
너와 내가 만나 억만 겁의 시간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나비와 꽃씨의 말을 다 듣지 못하고
경계를 지우는 거미줄에 일생을 걸고 무늬를 짜는
이슬방울을 다 세지 못했기 때문이다
흰옷을 입고 빙하기를 건너온 당신
조금씩 제 몸을 녹여 써 나가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젖은 말들
야크의 몸속에서 첫말이 되어 몽클거린다
라마승이 내어주는 수유차를 마시다가
금이 간 찻잔에서 흘러내리는 야크의 눈물을 보았다
-『시와산문』 2013년 가을호
티베트 / 사진 김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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