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내가붉었던것처럼당신도붉다』

풀등 / 김경성

by 丹野 2019. 8. 13.

   


 

 






풀등


김경성

 

  



기억의 집은 견고해서 무너지지 않는다

축대 밑이 온통 암벽이다

창호지 문에 구멍을 내고 방안을 들여다본다

자글거리는 생각들과 빛바랜 사진이 수북이 쌓여 있어서

시간을 잊으면 빠져나올 수가 없다

 

기억의 집을 찾아서 하루에 두 번씩 오는 고래가 있다

대이작도 큰 풀 안 언덕에 앉아 있으면

바다 한가운데 고래 한 마리가 엎드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들썩 꼬리를 흔들 때면

새들은 고래 몸속으로 흘러들어 가는 물길에 발목을 묻고

수만 장의 사진을 연대기별로 정리한다

 

먼바다까지 끌고 나가서

부서지도록 던져 놓아도 다시 제 속으로 들어와 새살이 돋게 하는

기억들과 손끝에서 왈칵 꽃이 피게 하는

달큰한 추억의 시간,

어느 것 하나 내 것 아닌 것이 없다

 



밤새도록 쏟아붓던 비 그치고

바다의 주름치마를 들치고 누워있는 고래를 만난다

먼바다까지 나갔다가 돌아와 숨을 고르며

기억의 길을 풀어내는지 향긋한 눈물이 흐른다

고래의 배에 얼굴을 묻는다

무언가 몸속에서 꿈틀거린다

고래 위에 눕는다

바다 위에 별이 가득하다, 별자리를 찾아서

옆으로 옆으로 굴러간다, 뭉클하게

꼬리지느러미에 걸린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11월호 발표

 

          




  

     

김경성 시인

  

전북 고창에서 출생. 2011년 《미네르바》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와온』(문학의전당, 2010)이 있음.

 

http://www.seeinkwangjang.com/ 웹진 시인광장














대이작도 풀등 / 프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