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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내가붉었던것처럼당신도붉다』

해인사 장경판

by 丹野 2019. 8. 13.

 


 

해인사 장경판

 


김경성



오래된 숲을 들여다 본다

행과 연을 맞추어서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가 모두 숲의 중심이 되는

햇빛은 사라지고 오직 그림자와 바람만이 가득한 숲

그림자 가득 머금은 채

제 몸을 훑고 가는 바람의 탯줄을 붙잡고 서 있어야만 하는,

관절 마디마디에 짜디짠 바닷물 들여놓고

나이테를 가르며 달려드는 날카로운 칼날에

온몸을 던져서 제 몸에 경전을 돋을새김했던 기억으로

달이 뜨는 밤이면 목신木神의 춤이 시작된다

제 안에 모두 들일 수 있다고

완강하게 서 있는 눈물 출렁이는 숲,

달빛 휘감으며 내려놓는 말씀은 늘 깊다

나무의, 숲의

몸을 끌어안고 제 마음의 심지를 새기면서

옹이까지도 모두 사랑하리라 어루만지던 그 사람의 온기가

나무의 몸속에 들어 있는 듯

천년이 흘러도 마음 그대로이다

그늘 한 자락 끌어다 덮고 말씀에 젖는다

주석이 필요한 사랑도

더는 내려설 곳 없는 절망도

숲에 들어서면 그대로 위안이 되는

지상에서 가장 은밀한 숲,

묵향 가득한 경전 지상의 숲에 펼치고 있다

그대 숨결 같은 바람 세상에 가득하다

 

 

 

 - 신작 소시집 『우리詩』201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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