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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내가붉었던것처럼당신도붉다』

삼층석탑

by 丹野 2019. 8. 13.

 



 

 

삼층석탑 

김경성

 

 

신륵사 강월헌江月軒 우물천장의 꽃들과 삼층석탑은

여강의 물소리로 시간을 읽는다

 

소리의 문자로 각인되는 암각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제 속으로 파고들고 

강물에 발목을 묻은 너럭바위는

초석이 되어서 묵언 수행 중이다

한떼의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 뒤집으며

깨어진 지붕돌을 어루만진다  

 

천 년 동안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는 강 밑바닥을 파고들어가면

숟가락 몇 개 묻혀있으리라고

청동거울은 짙은 녹청빛으로 물빛을 깨우고

 

제 발자국 하나 남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홀로 늙어가는 당신,

깨진 지붕돌에 귀를 대고

몸에 새겨진 암각화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운 것들은 곡선으로 흘러간다, 강물 한 자락 끌어다가

둥글어진 몸돌과 내 몸을 칭칭 감고

천 년의 한순간이 되어서

속삭인다

나 여기 있다고 

오래 기다렸다고

 

천 년 전 흐르던 여강이 천 년을 향하여 흘러 흘러간다

 

 

 

 

-『 시인정신 』2013년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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