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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내가붉었던것처럼당신도붉다』

물고기를 읽는 순서

by 丹野 2019. 8. 12.






그  해 여름 명옥헌








      2017. 08. 20. 명옥헌 자미화





물고기를 읽는 순서

 

김경성

 

 

그렇게 많은 비늘을 떼어내고도 지느러미는 한없이 흔들린다

물속의 허공은 잴 수 없는 곳이어서

헤엄을 쳐도 늘 그 자리에서 맴돌 뿐

휘감아 도는 물속의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당신이 그리울 때마다 비늘 꽃을 피워 올렸다

붉은 몸 이지러졌다가 다시 차오르기를 몇 번이나 했던가

뜨거움이 차올라서 목울대에 걸릴 때면

비늘 한 장씩 내려놓다가 한꺼번에 쏟아놓으며

길을 찾아서 갔던 것이다

 

석 달 아흐레 동안만 눈을 뜨고 당신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감기지 않는 눈을 덮은 비늘, 마지막 한 장 떼어내며

당신의 눈 속에 들어가 있는 나를 찾았을 때

뼈 마디마디에서 향긋한 냄새가 났다

 

여울에 화살처럼 박히던 소나기도 제 갈 길로 가고

뭉게구름 물컹거리며 돋아 오르고 있었다

  

비늘 다 떨구고 뼈만 남은 가시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을 움켜쥐었다

 

 

 

 

- 계간『다시올문학2014년 여름호













2012년 명옥헌




 

                                                                                                          Ballerina - Gnomu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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