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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내가붉었던것처럼당신도붉다』

적멸의 방

by 丹野 2019. 8. 12.

       

       

      적멸의 방  

      김경성

       

       

      창문이 없는 방에 들었다

       

      불쑥 들어오는 바람이

      방안을 휘젓고 다니다가

      알몸으로 빠져나가며

      문설주에 걸린 바람의 옷이 함께 흔들렸다

       

      밤이면 작은 새들이 깃털을 다듬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방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배흘림기둥을 타고 

      끈적하게 빗물이 흘러내렸다

      지붕의 갈비뼈 틈으로 빗물이 스며들어서

      온통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오래전에 높이 날았던 기억은 지워지고

      비행 깃털마저 퇴화되어 더는 날지 못한다

      두 발을 땅속에 묻고

      날개를 활짝 펴서 둥근 집을 만들었다

       

      개심사 심검당 오르는 길,

      움집같은 공작단풍이 내어주는 방에 들어

      바람의 옷을 입었다

       

      비 쏟아지는 늦가을 아침이었다

       

       

       

       

      -미네르바2013년 봄호

       



       

       

       

       

       

       

      01_ Adagio T.Albinoni 아다지오 알비노니
      02_ Air J.S.Bach G선상의 아리아 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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