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산가옥 / 김제에서
그가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도
그의 마음속에 쌓아둔 것도
모두 흙 한 줌에서 시작되었다
설겅설겅 썰어놓은 짚단을 넣고 흙을 버무려서
대나무 엮은 발에 대고 벽을 쌓았다, 백 년 전의 일이라고 했다
시멘트 껍데기 한 꺼풀 벗겨 낼 때마다
풋풋한 지푸라기와 붉은 흙 살아서 꿈틀거렸다
탱자나무의, 머위의, 은꿩의다리의, 자궁이었던
아이를 낳고, 아이가 또 아이를 낳고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의 자궁이었던
붉은 흙집 적산가옥, 산란의 눈부심을 무어라 적어야 할까
너에게로 가는 길로 들어서는 것도 흙길이었고, 강물을 거슬러서 올라갔던
은어 떼, 몸 누인 곳도
지층의 속 겹이었으니
벗어날 수 없는 산란의 감옥
한 줌의 흙이여
계간 『 열린시학』 2011년 겨울호
詩作메모
그날이었다, 직립의 시간 허물어지는 날이었다.
박물관 답사를 갔던 날
무슨 연유에서인지 적산가옥은 하루 더 살아남았고, 우리는 그 집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오후 네 시 무렵이었다. 담쟁이덩굴 담벼락을 타고 올라서 조금씩 몸을 흔드는 시간이었다.
향교의 태극무늬 선명한 대문 빗장 열어서 오래된 바람 한꺼번에 쏟아져나오는 시간이었다.
다 식은 아궁이 그을음 흔적마저 낮게 가라앉은 시간, 그렇게 붉은 흙과 마주쳤던 것이다.
시들어서 꽃대만 남은 개망초 그림자 길게 늘어뜨려서 작은 창문에 제 흔적은 남기는 그 너머로
내 그림자 내려놓고 그 풍경으로 들어갔었다.
- 2010. 11. 07 프라하
- 계간 『 미네르바』 2011년 여름호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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