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의 방
김경성
창문이 없는 방에 들었다
불쑥 들어오는 바람이
방안을 휘젓고 다니다가
알몸으로 빠져나가며
문설주에 걸린 바람의 옷이 함께 흔들렸다
밤이면 작은 새들이 깃털을 다듬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방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배흘림기둥을 타고
끈적하게 빗물이 흘러내렸다
지붕의 갈비뼈 틈으로 빗물이 스며들어서
온통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오래전에 높이 날았던 기억은 지워지고
비행 깃털마저 퇴화되어 더는 날지 못한다
두 발을 땅속에 묻고
날개를 활짝 펴서 둥근 집을 만들었다
개심사 심검당 오르는 길,
움집같은 공작단풍이 내어주는 방에 들어
바람의 옷을 입었다
비 쏟아지는 늦가을 아침이었다
-『미네르바』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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