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자의 추억
고성만
고립을 즐겨하면서부터 나는
해자(垓字)를 사랑하게 되었다
시녀와 시동들 모두
성 밖으로 내보낸 중세 영주같이
적막이 말랑말랑해지도록 씹고 또 씹었다
물이 벙벙한 연못에
흰 꽃송이처럼 떠다니는 오리들 어쩌다
도개교(跳開橋)를 열고 미끄러지듯 흘러들어오는
시정의 어지러운 소문들
장엄하게 나뭇잎이 지고 있었다
별들이 밤을 새워 천체를 운행하는 동안
아아, 사직을 떠받치던 충신들
국가를 경영하던 집사들은 죄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서둘러 짧아지는 햇살
깊어가는 어둠 속
오사카의 언덕에서 바라보는 구름과
시에라네바다 산록에 휘날리는 눈발은
어떻게 다른지
소리 없이 나는
나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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