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추
고영민
비비추라는 꽃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한번 본 적 없는 그 꽃을
왠지 알고 있는 듯도 하네
그 꽃은 누구에게도 잠깐 빌려온 저녁
그 먼 곳의 가짓빛 하늘과
꽃대
단지 이름만으로도 떠오르는 희디흰 얼굴 너머
약가 문드러진 목소리
그러다 결국엔
속속들이 너를 다 알아버릴
어느 슬프고도 멋모를
저녁 한때의 시간
비비추라는 꽃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한번 본 적 없는 그 꽃을
오랫동안 그리워한 적이 있는 듯도 하네
밤새 손전등을 들고
기웃이 내 부근을 서성이던
강기슭과 젖은 물관부 너머
불 꺼진 울타리와
잠들기 위해 찾아간
개개비 둥지, 눅눅한 바위 밑
움푹 파인 그 자리
비비추라는 꽃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이내 잔잔해진 귀에 대고
아주 오랫동안 소곤거린 듯
그저 비비추, 비비추
몇번이고 중얼거려보는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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