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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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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 고영 달걀 고영 조금 더 착한 새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 창을 닫았다. 어둠을 뒤집어 쓴 채 생애라는 낯선 말을 되새김질하며 살았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집은 조금씩 좁아졌다. 강해지기 위해 뭉쳐져야 했다. 물속에 가라앉은 태양이 다시 떠오를 때까지 있는 힘껏 외로움을 참아야 했다. 간혹 누군가 창을 두드릴 때마다 등이 가려웠지만. 방문(房門)을 연다고 다 방문(訪問)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위로가 되지 못하는 머리가 아팠다. 똑바로 누워 다리를 뻗었다. 사방이 열려 있었으나 나갈 마음은 없었다. 조금 더 착한 새가 되기 위해서 나는 아직 더 잠겨 있어야 했다. 조금 더 착한 새가 되기 위해서 장석주 시인 문학평론가 달걀은 알의 한 종류다. 알은 상징세계에서 영(零), 중심, 생명의 배자(胚子)를 가리킨다. 우.. 2024. 9. 13.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 이성복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 이성복 詩는 '머리의 언어' 전복시키는 '몸의 언어' “여배우의 모습 밑에서 수녀를 사랑하다니!…” 19세기 프랑스 작가 네르발의 ‘실비’라는 소설의 이 한 구절은 30년의 내 문학적 삶의 도정을 드러내는 적절한 비유로 쓰여질 수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지금까지 내가 문학을 애지중지해 왔던 것은 구두 밑창을 파고든 압정처럼 좀처럼 빠지지 않는 신경증적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책 제목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끌어와 말하자면, 지난 세월 내 혼곤한 문학적 삶은 ‘야심’이라는 의지와 ‘문학’이라는 표상의 합작품이었던 셈이다. 대체 난공불락의 그 신경증적 야심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떤 까닭으로 하필 문학이라는 탄두를 가지게 되었는.. 2024. 9. 10.
호두나무 잎사귀가 있는 저녁 / 장철문 호두나무 잎사귀가 있는 저녁 장철문 호두나무 잎사귀 사이, 하늘에 막 생겨나는 달이 있었다 호두나무 잎사귀 사이, 마음에 막 생겨나는 사람이 있었다 어스름 속에서 막 돋아난 달처럼 막 피어난 호두나무 푸른 잎사귀 사이로, 돋아나는 사람이 있다는 데 놀라고, 그 사람이 지금 곁에 없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는 데 또 놀랐다 어스름 바람에 팔랑이는 호두나무 잎사귀 사이로, 그 사람도 달을 보고 내가, 그 사람에게 생겨나는 달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사람의 씽긋 웃는 얼굴이 호두나무 잎사귀 사이, 하늘에 떠 있었다 어두워지는 호두나무 잎사귀 아래서 그 사람을 보고, 다시 보고 호두나무 잎사귀를 흔드는 바람이 살을 감고, 달이 싱거워지고 검은등뻐꾸기 소리와 호랑지빠귀 소리에 귀가 기울고, 하늘에 떠 있는 그 사람.. 2024. 9. 6.
낭만시인 첫걸음 시창작 10강 / 나호열 낭만시인 첫걸음 시창작 10강 ■ 사물의 현상으로부터 연상 聯想까지 ! 사이시옷 나호열 저 멀리 한 마리 학이 앉아 있는 듯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 포근히 기대어 사이 시옷 사람(人)들이네 흙이 물과 불이 만나 이룩한 우주를 향해 펼친 날개 사이시옷의 물결을 보네 - 시집 『안부』(밥북 기획시선 30, 2021) ■ 나호열 충남 서천 출생. 『월간문학』(1986), 『시와 시학』(1991)으로 등단. 경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졸업. 시선집 『울타리가 없는 집』(2023), 『바람과 놀다』(2022), 시집 『안부』 (2021), 『안녕, 베이비 박스』 (2019), e- book 『예뻐서 슬픈』 (2019) 등 다수. ■ 해설 “기와를 노래함”이라는 부제가 달린 작품이다. 이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시인은 .. 2024. 9. 4.
너는 / 전윤호 너는 전윤호 왜군이 독립군의 목을 작두로 자를 때 가족들을 교회에 몰아 놓고 불을 지를 때 지진이 났다고 조선인을 사냥해 죽일 때 사내들은 잡아가 탄을 캐게 하고 처녀들을 잡아가 노리개로 삼을 때 쌀은 다 실어가고 콩깻묵을 먹일 때 무슨 공덕으로 이 땅에 다시 태어나 김구를 죽이고 소녀상을 욕보이고 이 나라의 녹을 받으며 왜놈 편이 되는 게냐 배워서 친일하고 정치해서 친일하고 이 나라 군대 계급장 달고 친일하면 누구에게 칭찬 받고 누구에게 충신이 되는 게냐 홍범도가 만주에서 왜놈들을 무찌를 때 총알 하나 보태지 못한 것들이 유관순이 안중근이 옥에서 죽어갈 때 입도 뻥끗 못한 것들이 무슨 낯으로 지금 이 땅에서 푸닥거리나 하면서 떵떵거리며 사는 게냐 —월간 《문장 웹진》 2024년 9월호 ---------.. 2024. 9. 4.
나무가 말 하는 법 / 송재학 나무가 말 하는 법 /송재학 나무는 무엇을 속삭이는가 꽃의 숨소리 공기의 숨소리 나무의 숨소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섞이고 있다 발자국을 감추는 데서 나무의 말이 시작되었다 바스라지는 가랑잎에는 나무의 말이 같이 흩어지는 중이다 무성한 잎새 속에서 나무의 말은 바람에 스며드는 게 익숙해졌다 나무라는 움직임에도, 森이란 글자에도 나무의 말이 건너가 있다 나무의 말이 죄다 음각화이니까 나무의 말은 점자가 우선이다 소리라 부를 공명통은 망각했지만 입을 닮은 귀의 흔적은 예민하게 남았다 나무의 말은 숲의 모든 그림자를 물고 있다 나무의 그림자를 따라 천천히 나무 속으로 걸어 들어간 옹이를 더듬자 입말이 준비되었다 나무의 말은 숲의 소리 앞쪽에 있다 저 혼자 소리 내지 않는 말이기에 오래전 사람도 나무의 말을 배운.. 2024. 9. 4.
시창작-시의 세계로 창작하다 / 나호열 https://youtu.be/66zMCnEEj_c?si=3VejZrN4wpE4bS0n 2024. 8. 18.
낭만시인 첫 걸음 시창작 7강 / 나호열 https://prhy0801.tistory.com/m/15686028 낭만시인 첫 걸음 시창작 7강낭만시인 첫 걸음 시창작 7강  ■ 심리적 거리란 무엇인가?.  형님을 데리고  정병근 천지에 나 닮은 이가, 수심에 가득 찬 이가 전철역 출구 앞에 행방 없이 서 있다 납작하고 prhy0801.tistory.com낭만시인 첫 걸음 시창작 7강나호열■ 심리적 거리란 무엇인가?.형님을 데리고정병근천지에 나 닮은 이가, 수심에 가득 찬 이가전철역 출구 앞에 행방 없이 서 있다납작하고 깡마른 얼굴에 툭 튀어나온 입을 위로 꽉 다물고어쩌면 나 같은 상념에 젖는지소란의 바깥으로 눈을 보낸 채아니면 아닌 모양으로 서있다차들은 지나가고 나는 에이고 외로워져서남인 듯 명랑하게 그를 부른다그이는 나를 얼핏 못 알아보다가 .. 2024. 8. 18.
낭만시인 첫 걸음 시창작 6강 / 나호열 https://prhy0801.tistory.com/m/15686004 낭만시인 첫 걸음 6낭만시인 첫 걸음 6 ■ 현대적 삶의 증언 모던타임즈       최서림 왼쪽 눈은 인조백합이 만개해 있다.오른쪽 눈은 독거미가 진을 치고 있다.전쟁 같은 평화 속에서자기 자신조차 믿을 수 없prhy0801.tistory.com낭만시인 첫 걸음 6강나호열■ 현대적 삶의 증언모던타임즈       최서림왼쪽 눈은 인조백합이 만개해 있다.오른쪽 눈은 독거미가 진을 치고 있다.전쟁 같은 평화 속에서자기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자들,영감 고리오의 콧날을 가졌다.노파 일리나의 갈고리 손을 가졌다.에프 원 경주대회 같은 세상 속에서생의 브레이크가 파열된지도 모르고,어디로 굴러떨어지는지도 모르고굴러가는 자들의 입이 점점뭉크빛 공포.. 2024. 8. 18.
낭만시인 첫 걸음 시창작 5강 / 나호열 https://prhy0801.tistory.com/m/15685988 낭만시인 첫 걸음 시창작 5강낭만시인 첫 걸음 시창작 5강  ■ 애매어의 활용 는개라는 개        배세복 사내가 창밖을 내다보니개 한 마리 벤치에 엎드려 있다젖은 몸이 어딜 쏘다니다 돌아왔는지가로등 불빛에 쉽게prhy0801.tistory.com낭만시인 첫 걸음 시창작 5강나호열■ 애매어의 활용는개라는 개        배세복사내가 창밖을 내다보니개 한 마리 벤치에 엎드려 있다젖은 몸이 어딜 쏘다니다 돌아왔는지가로등 불빛에 쉽게 들통났다서서히 고개 돌려보니곳곳에 개들이 눈에 띄었다야외 체력단련기구 위에도지친 여러 마리의 개들차가운 철제 의자에 젖어 있었다당신이 떠난 후로 습관처럼밤은 또 개를 낳았다그것들은 흐리고 가는 울음이다가가.. 2024. 8. 18.
낭만시인 첫 걸음 시창작 4강 / 나호열 https://prhy0801.tistory.com/m/15685976 낭만시인 첫걸음 시창작 4강낭만시인 첫걸음 시창작 4강 ■ 상식을 뒤집어 보기 모르는 사람        김나영 그가 뒤통수를 내어준다나도 내 뒤통수를 깃털처럼 내어준다 뒷사람에게우리는 뒤통수를 얼굴로 사용하는 사prhy0801.tistory.com낭만시인 첫 걸음 시창작 4강나호열■ 상식을 뒤집어 보기모르는 사람        김나영그가 뒤통수를 내어준다나도 내 뒤통수를 깃털처럼 내어준다 뒷사람에게우리는 뒤통수를 얼굴로 사용하는 사이무덤덤하게 본척만척서정과 서사가 끼어들지 않아서 깔끔하지서로 표정을 갈아 끼우지 않아도평생을 함께하지 반복해서 노력하지 않아도서로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 권리를 위하여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비행기를 타고 .. 2024. 8. 18.
낭만시인 첫 걸음 시창작 3강 / 나호열 https://prhy0801.tistory.com/m/15685966 낭만시인 첫걸음 3강낭만시인 첫걸음 3강 ■ 어머니를 비유하기흰 수건 권영옥 채전은 나비에게 경계 너머에만 있습니다나비가 울타리를 넘어와 파밭을 돌더니어제처럼 손을 비빕니다나비 손이 파꽃 위에 봉긋이prhy0801.tistory.com낭만시인 첫 걸음 시창작 3강나호열■ 어머니를 비유하기흰 수건권영옥채전은 나비에게 경계 너머에만 있습니다나비가 울타리를 넘어와 파밭을 돌더니어제처럼 손을 비빕니다나비 손이 파꽃 위에 봉긋이 모아질 때장맛비가 날아와 파꽃을 텁니다생전처럼 마음 급한 나비는둔덕을 돋우느라 손톱 밑이 새까맣습니다눈을 떴다 감았다잠깐의 쪽잠도 힘듭니다왜 손바닥만 비빌까나비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안구에 흰구름이 끼고, 자면서도.. 2024.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