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주모 없는 주막을 쓸쓸히 지키는 늙은 회화나무 | |
이 땅의 마지막 주막으로 일컬어지는 경북 예천 삼강주막을 품고 서 있는 늙은 회화나무. | |
[2011. 9. 26] | |
주모가 떠나기 전, 슬레이트 지붕 위로 가을 햇살을 받은 삼강주막의 옛 풍경. | |
주모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는 발걸음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모 할머니 생각도 있었지만, 옛 주막을 그보다 더 옛날의 모습으로 복원한다는 경북도청의 계획이 그다지 달갑지 않아서였습니다. 삼강리는 원래 강둑이 쌓이기 전에 나루터였습니다. 주막은 나루터에서 배를 기다리는 소금배 상인들을 위한 쉼터이였지요. 한때에는 삼강주막 외에도 몇 개의 주막이 더 있었다고 합니다. 그게 1백 년 전 쯤의 이야기입니다. | |
말끔하게 새 단장한 삼강주막과 주막 앞에 새로 조성한 나루터 저자거리. | |
제법 근사하게 탈바꿈한 건 주막 뿐이 아닙니다. 주막 주변의 환경이 몰라보게 바뀌었습니다. 예전에 삼강주막 주변에는 빈터와 논이 있었는데. 이를 모두 갈아엎고 엣 나루터 분위기를 재현한 저자거리를 조성했습니다. 꽤 괜찮은 관광지가 된 거죠. 주차장도 널찍하게 조성했고, 심지어 진입로까지 편안하게 바뀌었습니다. 노을 지는 저녁 무렵 삼강주막 앞의 저자거리에는 적지않은 관광객들이 모여 권커니자커니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 |
주변 풍경이 모두 변했어도 여전히 푸른 이끼를 얹고 변함없이 서 있는 250살 된 삼강주막 회화나무. | |
그 중에 여든을 좀 넘긴 정강섭 노인은 돌아가신 주모 유옥연 할머니와도 친밀하게 지냈던 분입니다. 그 분은 제가 나무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삼강주막에 오면 먼저 주막 뒤의 커다란 회화나무에 말을 걸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나무가 대답을 하느냐는 제 질문에 정 노인은 나무는 말을 하지는 않지만, 나뭇가지를 살랑살랑 흔들며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는 표시를 하는 법이라며 두 팔을 들어 흔들었습니다. | |
주모 떠난 뒤에야 비로소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하고, 새 단장을 마친 삼강주막. | |
아마 나무가 없었다면 제게도 삼강리 주막의 모습은 잘 꾸민 하나의 민속촌 류의 관광지 정도로만 여겨졌을 겁니다. 대개의 영화촬영지에서 느끼는 아쉬움과 같은 느낌이었겠지요. 하지만 이곳에는 삼강주막의 역사와 내력을 오랫동안 잘 지켜온 한 그루의 커다란 회화나무가 있습니다. 주막이 세워진 것보다 150년 전에 이 자리에서 자라난 나무입니다. | |
깨끗이 정돈한 주막 부근에는 예전에 주모의 술상을 놓고 하루 노동의 피로를 풀던 평상은 사라졌습니다. | |
잘 생긴 회화나무 그늘은 지금 깨끗이 정돈되었고, 그 곁에는 주막에는 어울리지 않는 고급 자동차가 멀쩡한 주차장을 놔두고 들어와 세워져 있었습니다. 여느 관광지에서라도 볼 수 있는 몇몇 사람들의 분별 없는 행동이지 싶습니다. 그 뿐 아니라 새로 단장한 주막의 흙담에는 누구누구가 다녀갔다는 낙서들이 빼곡히 적혀있습니다. 그냥 굵은 펜으로 적은 낙서도 있지만, 아예 흙을 파내어 깊이 새긴 낙서까지 있었습니다. | |
삼강주막 툇마루에서 내다보이는 회화나무의 넓고 굳은 줄기. | |
백 년 전의 나루터를 재현한 삼강리 나루터와 삼강주막. 그곳에는 그 동안 주모 할머니와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쌓았던 세월의 앙금을 그렇게 모두 벗겨내고 바깥 사람들의 쉼터로 탈바꿈하는 중입니다. 백 년 전의 세월의 옷을 입느라 십여 년 전의 세월이 뭉텅뭉텅 벗겨진 게 무척이나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한 그루의 오래 된 회화나무가 넉넉한 그늘로 지켜주는 게 다행입니다. 세월 더 지나고, 사람살이에 지친 어느 저녁 무렵, 이 회화나무가 있는 삼강주막을 다시 찾아가게 되겠지요. | |
신문 칼럼 [시가 있는 아침]에 김요일 시인의 시 '롱 테이크'와 함께 소개한 벼락맞은 곰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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