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가을 하늘 아래 사람과 더불어 사는 느티나무 | |
"하늘을 나는 새가 나뭇잎 위에 가을 빛을 떨구고 파란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 |
[2011. 10. 10] | |
봉화 거촌리 황전마을 동구밖 도암정 풍경. | |
가을 깊어지면서 찾아본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가 있습니다. 경북 봉화읍 거촌리 황전마을이라는 한적한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입니다. 나무 곁에는 도암정이라는 아담하고 예쁜 정자가 함께 있어서, 저는 그냥 '도암정 느티나무'라고 부르지요. 오래 전에 냈던 제 책 '옛집의 향기, 나무'에서도 소개했던 나무로, 그닥 대단할 것 없는 나무이지만, 저는 여느 큰 나무 못지않게 좋아하는 나무입니다. | |
도암정 들어서는 자그마한 쪽문. | |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고 지날까 하고 나무 곁으로 찾아들었는데, 거기엔 뜻밖에도 흥미로운 사람살이가 살아 있었습니다. 그때 도암정 안에는 마을 어른들이 앉거나 누워서 하루의 피로를 풀고 있었지요. 그리고 그 바깥의 느티나무 그늘에도 마을 사람 여럿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정자 안의 누마루에도 여유가 넉넉해 보였는데, 느티나무 아래에 사람들이 나와 앉은 게 조금은 의아했지요. | |
도암정 지붕으로 나뭇가지를 넉넉하게 펼쳐낸 도암정 느티나무. | |
짐작대로 도암정에는 이 마을 사람들의 사용법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을 안에 모시고, 젊은 사람들은 바깥에 나와 앉는다는 것이었지요. 그럴 만도 한 이유는 있었습니다. 이 마을을 대표하는 선조 가운데에는 조선시대의 문인 김종걸이라는 분이 있는데, 이 분이 당시 '호랑이도 감동시킨 효성'으로 팔도에 이름을 널리 알린 분이었습니다. 그 분의 후손들이 살아가는 이 마을은 여전히 '경상북도 지정 효 시범 마을'입니다. 정자 사용법에서부터 효도 정신을 실천하는 곳이라는 이야기지요. | |
집채 만한 바윗돌을 이고 선 나무 뿌리 위로 둘로 나뉘며 올라간 도암정 느티나무 줄기. | |
여름 보내면서 그 나무가 떠올라, 다시 봉화 도암정 느티나무를 찾았습니다. 나무들이 낙엽하는 가을 탓인지, 나무는 이전에 비해 약해 보였습니다. 바람 선선해진 이유로 느티나무 그늘에도 도암정에도 사람들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자 앞 연못의 연꽃도 이미 꽃 떨군 지 오래됐고요. 정자 안팎과 느티나무 주위를 한참 돌아다니다가, 느티나무에 기대어 있는 바로 옆 집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반갑게 맞아주신 건 이 집의 예천댁 아주머니였습니다. | |
주로 마을 어른들이 이용하는 도암정 내부. | |
지붕 가까이로 가지를 넓게 펼친 느티나무를 바라보면서 예천댁 아주머니는 굽은 허리를 잠시 펴며 나무가 늙어서 예전만 못 한 걸 아쉬워 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몇해 전에 비해 부쩍 수척해 진 게 눈에 들어올 정도였으니까요. 가을 탓만은 아니었습니다. 나무가 이태 전에 바람을 못 이기고, 몇 개의 큰 가지가 부러졌다는 겁니다. 부러진 나뭇가지의 속이 텅 비어 있었다고 합니다. | |
도암정 앞의 연못에 무성하게 올라온 연꽃 풍경. | |
지난 주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왔습니다. 뇌졸중으로 대화가 쉽지 않은 스웨덴의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가 올 수상의 영예를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지만, 우리 글로 번역된 시집이 하나 있습니다. 누구보다 자연을 노래한 시를 많이 남긴 분입니다. 그 분의 시 가운데 한 편을 오늘 아침의 '시가 있는 아침'에 소개했습니다. 번역서의 번역을 고쳐서 소개했습니다. 음미해 보시지요. | |
한해동안 맺은 열매를 갈무리해야 하는 계절, 모두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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