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사라진 옛 마을에서 사람의 향기를 간직하고 살아 남아 | |
원자폭탄이 투하된 뒤에도 살아남았을 만큼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약모밀의 꽃. | |
[2011. 9. 19] | |
올 초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청원 연제리 모과나무. 모과나무 가운데에는 유일한 천연기념물입니다. | |
명절 전에 충남 청원 지역을 답사했습니다. 추석 앞의 혼잡한 교통 사정을 피할 요량이기도 했지만, 명절 때면 떠오르는 나무가 있어서였습니다. 청원 연제리 모과나무가 그 나무입니다. 처음 이 나무를 만난 건 십 여 년 전입니다. 우리나라의 모과나무 가운데에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몇 그루 가운데 하나이지만, 그때만 해도 그리 유명한 나무는 아니었지요. 이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건 올 1월이었지요. | |
연제리 모과나무는 오래 된 나무이지만, 여전히 열매를 튼실하게 매답니다. | |
그때도 추석을 며칠 앞둔 때였습니다. 노파들은 수다스럽다고 해도 좋을 만큼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 분이 동시에 늘어놓는 이야기는 수신인에게 도달하지 않고 그냥 허공으로 흩어졌습니다. 노파들도 수신인을 염두에 두지 않는 듯했습니다. 노파들 곁에 주저앉았지만, 도무지 한 분의 이야기조차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허공으로 흩어지는 말들 사이에서 '아이들, 애들, 며느리, 딸, 손주, 아들' 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 |
사람의 향기를 간직하고 우람하게 하늘로 솟아오른 연제리 모과나무의 줄기. | |
그리고 한 동안 이 나무를 찾지 못했어요. 당연히 노파들에 대해서도 별로 생각할 겨를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5년 쯤 전에 다시 이 나무를 찾았습니다. 당연히 나무 곁에서 만났던, 조금은 우스운 노파들의 수다 생각도 짊어지고 찾아갔지요. 그런데 아뿔싸! 나무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분명 수첩에 적어둔 번지 수도 틀리지 않았는데, 그 수다한 노인들이 깃들어 살던 다정한 마을은 통째로 사라지고, 황량한 공사판이 늘어져 있었습니다. | |
세월이 할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며 숱한 옹이와 상처 자국을 남긴 연제리 모과나무의 줄기. | |
나무 줄기에 담겨있을 노파들의 수다를 귀가 아니라 눈으로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날 뒤로, 연제리 모과나무를 생각하면, 자식을 그리워 하며 끊임없이 말들을 늘어놓던 노인들의 안부가 먼저 떠오릅니다. 십 년 전에 뵈었던 노인들이니, 그 분들의 건강도 염려됩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자식들과는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도 궁금하고요. | |
아름다운 얼룩이 선명하게 드러난 연제리 모과나무의 멋진 피부. | |
공원에는 아담한 정자도 하나 새로 지었고, '모과울'(과학단지 조성 이전의 마을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큼지막한 비도 세웠습니다. 정돈된 모습은 그리 나쁠 것 없지만, 사람의 향기가 사라져 나무는 몹시 외로워 보였습니다. 옛 사람의 흔적도 그렇지만, 아직 단지 조성 초기 단계여서, 공원을 찾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명절 전에 조금은 우울해진 마음으로 연재 칼럼을 써야 했습니다. | |
아늑한 옛 마을 '모과울'이 사라진 오송생명과학단지 안에 홀로 살아 남은 청원 연제리 모과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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