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속도 外 2편
박남희
구름과 이별한 빗방울이 전속력으로 뛰어내려
제 몸을 부수는 것은 목마른 땅의 간절한 눈빛이
빗방울을 전속력으로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별의 속도는 마음이다
마음이 버리고 마음이 잡아당긴다
언뜻 보면 지구는 태양이 버린 마음이고
달은 지구가 버린 마음이다
멀어져가는 지구와 달을 끝내 버릴 수 없어
다시 끌어당기는
태양과 지구의 마음을 어쩔 것인가
사람들은 그것을 인력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사실 사랑이다
멀어지려는 것을 끌어당기다보면 어느새 둥근 사랑이 된다
이별의 속도가 제로가 된다
비문碑文
박남희
봉긋한 가슴 옆에 서 있는 거
그게 비문이야
가슴으로 읽어도 잘 읽히지 않는 게 비문이야
제 몸에 말을 새기고
온 몸으로 말을 하려는 것이 비문이야
비문은 편지 같은 게 아니야
바람 같은 거야
상징 같은 거야
구름을 보고 웃는 듯 마는 듯 잠자는 듯 깨어있는 듯
그렇게 백년을 살아 제 몸의 목소리 희미해져도
제 곁에 풀 베는 소리 아주 안 들려도
봉긋하던 가슴이 평지가 되어도
끝끝내 우뚝 서서
스스로가 경전인 거야, 비문은
나사
박남희
내 기억은 나사 모양으로 되어있다
그리하여 무언가를 감고 수없이 돌아서
그것을 단단히 조이려는 성향이 있다
나사의 원조는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인데
뱀이 지시하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이브를 만날 수 있다
그 옛날 이브는 결국 뱀 모양의 볼트의 꼬임에 빠져
스스로를 너트로 만들었던 것인데
그 때부터 해와 달은 보이지 않는 볼트와 너트의
궤도를 따라 쉬지 않고 돌기 시작했던 것인데
한번 너트에 든 볼트는 궤도를 따라 돌면서
한 몸이 되어갔던 것인데
너트와 한 몸이 되어있는 볼트는
아담이 아니라 뱀이라는 게 문제여서
결국 나사를 따라가다 보면 죄와 만나게 된다
그떄부터 내 기억 속에는 수많은 뱀이 살기 시작했고
뱀은 날마다 이브를 그리워했다
원초적인 숙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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