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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초롱꽃 外 1편 / 구재기

by 丹野 2009. 3. 30.

 

 

 

초롱꽃 外 1편

    -H에게

 

구재기

 

 

내가 없음으로

나는 온전한 네 차지다

 

순간, 나의 길에는

 

어디에도 내가 없고

어디에도 내가 있다

 

초롱꽃은 매양

무수한 꽃등을 밝히고

 

나는 내가 없음으로

 

온전한 흔들림의 반어가 된다

굳어버린 언어의 꽃으로 핀다

 

 

 

민둥산에 올라

 

 구재기

 

 

민들레 꽃씨가

제 몸을 그냥 날리고 있다

바람에 실려 날리는 데에야 본래의 느낌이 있으랴

몸을 버리고 나면

주림도 목마름도 없다

굳이 추위와 더위도 말하지 않아도 된다

하물며 어찌 은혜와 사랑을 말하겠는가

민들레 꽃씨는

민둥산으로 치솟아 오르면서그 동안 자신을 가리던

큰 나무의 그늘을 벗어났음을 깨달았을 뿐이다

벗어난다는 것은 걸림을 없앤다는 것

민둥산에 떠 온전히

여여*함으로써 살 수 있는 자유

이제 얼바람**이라 해도 좋다

어떻게 머물다가 어떻게 자라고

또 소멸하여 왔는가를

물샐 틈 없이 지켜볼 까닭이 있겠는가

땅 속 깊이 곧은 뿌리 하나로 버티다가

경계를 벗어난 민들레 꽃씨

업장소멸業障消滅 길을 따라

비로소 탁발을 나가기 시작한다

 

 

 

*여여하다 : 부드럽고 연하다. 유연하다

**얼바람 : 어중간하게 들떠서 실없이 허황한 것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