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은 쓸쓸하다
신현락
붕어빵 기계가 고물상에 누워있다
요양원 마을을 돌아가는 골목길 어귀
고철과 비철 사이에서 헤진 입을 벌리고 있다
그 입을 수천 번도 더 뒤집었을
철사갈고리 같은 손은 이제 없다
내용물이 사라진 포장지처럼
붕어빵의 형식만 남아서 용도폐기 되었다
원본과 복제품 사이에서 붕어와 빵 사이에서
천 원에 한 봉지씩 따뜻함을 선사하던 붕어빵 기계
가난한 허기와 식욕이 곤죽을 이룬 채
뜨겁던 열을 입 속에 품었던
지난 시간들을 복제하고 있다
모든 원본은 쓸쓸하다
빵은 붕어를, 붕어는 기계를, 자식들은 어머니를
복제하고, 어머니는 위리안치 된다
울울울 몸 밖으로 끓어 넘치던
말랑말랑한 신생의 자식들과
함께 할 정다운 시간은 이제 없다
고철이 다 된 몸으로 어머니는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는
달랑 몇 잎 남은 통장 같은 시간을 마른 가슴에 품는다
요양원 흰 담장에 쪼그리고 앉은
한때는 연둣빛 바람처럼 싱싱했을 어머니
한 모금 햇살을 되새김질 하며
겨울과 봄 사이에서 졸음과 하품 사이에서
한 잎씩 죽음을 복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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