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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원본은 쓸쓸하다 / 신현락

by 丹野 2009. 3. 16.

 

 

 

원본은 쓸쓸하다

 

신현락

 

 

붕어빵 기계가 고물상에 누워있다

요양원 마을을 돌아가는 골목길 어귀

고철과 비철 사이에서 헤진 입을 벌리고 있다

그 입을 수천 번도 더 뒤집었을

철사갈고리 같은 손은 이제 없다

내용물이 사라진 포장지처럼

붕어빵의 형식만 남아서 용도폐기 되었다

원본과 복제품 사이에서 붕어와 빵 사이에서

천 원에 한 봉지씩 따뜻함을 선사하던 붕어빵 기계

가난한 허기와 식욕이 곤죽을 이룬 채

뜨겁던 열을 입 속에 품었던

지난 시간들을 복제하고 있다

모든 원본은 쓸쓸하다

빵은 붕어를, 붕어는 기계를, 자식들은 어머니를

복제하고, 어머니는 위리안치 된다

울울울 몸 밖으로 끓어 넘치던

말랑말랑한 신생의 자식들과

함께 할 정다운 시간은 이제 없다

고철이 다 된 몸으로 어머니는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는

달랑 몇 잎 남은 통장 같은 시간을 마른 가슴에 품는다

요양원 흰 담장에 쪼그리고 앉은

한때는 연둣빛 바람처럼 싱싱했을 어머니

한 모금 햇살을 되새김질 하며

겨울과 봄 사이에서 졸음과 하품 사이에서

한 잎씩 죽음을 복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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